❉ 이 유시(諭示)는 미수공(眉叟公)이 우의정(右議政)에서 물러나 연천으로 돌아가 나오지 않자
숙종대왕(肅宗大王)이 미수공이 다시 조정으로 돌아오기를 독촉하는 유시중의 하나다.
얼마 전 근시(近侍)에게 전한 나의 유서(諭書)에 나의 뜻은 다 말했으니 경(卿)이 퍼뜩 생각을 바꾸어 그날로 조정(朝廷)에 나오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경이 사직(辭職)하기를 굽히지 않고 아홉 차례에 이르렀으니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내말의 뜻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 - 내가 경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니 넘어지는 것을 지탱하는 것은 기둥과 주춧돌이고 의심나는 것을 풀적에 시구가 되고 물정(物情)을 진정시킬 때 큰 교악(喬嶽)이되고 은택(恩澤)을 베풀적에는 큰 내와 강이여야 되는 것처럼 내가 경을 이처럼 의지하는데 경은 사직(辭職)으로 매정하게 피하기만 하는구나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먹고 마실 것을 필요로 하듯 움직이는 사람이 손과 발을 잃는 것 같은 정도로도 나의 간절한 소망과 괴로운 마음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하다.
사신(使臣)가는 일이 중요하여 영상(領相)이 국경을 넘으면 삼정승(三政丞)의 자리가 갖추어지지 않을 것이고 대한(大寒)이 지나면 곧 경연(経筵)이 열릴텐데 경이 있어야 도(道)를 론(論) 할 수 있다.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고 농사를 권장하는 것은 경이 건의(建議)한 것인데 역시경이 있어야 예물(礼物)등 준비를 할 수 있다. 경이 나와야 마땅하고 물러나면 안된다는 것은 경이 더 잘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내어찌 많은 말을 하겠는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일상적인 법도라고는 하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면 더욱 굳세어 진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며 대신(大臣)의 직분이 분주히 일하는 것을 수고로이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이미 하유(下諭) 하였다. 사직상소(辭職上疏)를 열 번 올리더라도 윤허(允許)할 리가 없다. 이에 근시(近侍)를 보내 간절한 뜻을 말하니 경은 속히 사직상소를 그만올리고 빨리나와 도(道)를 론(論)하여 조야(朝野)의 바램에 부응하라.
- 이래도 미수공은 끝내 벼슬길에 다시나오지 않고 88세의 나이로 노종명(老終命) 하시었다.
- 이유시의 정본은 화성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