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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허응숙)의 1970년대 설교 원고 가운데 실린 가사들 [허경진]

| 할아버지의 1970년대 설교 원고 가운데 실린 가사들
나의 할아버지 만성(晩成) 허응숙(許應叔, 1889-1980) 목사는 어린 시절에 다니던 서당이 교회로 바뀌어 한문과 기독교를 함께 받아들였다. 그는 3・1운동 때에는 황해도 신천군 문화읍교회에서 전도사로 목회하다가 당회장 최현식 목사의 지시로 문화읍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3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기독신보」 1922년 7월 12일 자(제7권 제28호)에 “황해도 송화군 진풍면 태을리교회에서 손영곤, 허응숙을 청빙하여 사경회를 열어 백 명씩 출석하였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린 것으로 보아 출옥 이후 곧바로 활발하게 설교한 것을 알 수 있지만, 현재 나에게는 1970년에 82세 고령으로 마지막 개척한 인천동암교회 시절의 설교집만 남아 있다. 이 설교집에는 설교 초안 틈틈이 가사라든가 한시 등이 실려 있는데, 1973년 설교 초안 사이에 실려 있는 가사들은 다음과 같다.

마소마소 그리마소 국민대표 출마되여
자기당선 되고보면 진충보국 맹서하고
당선금일 배은망덕 국민대표 그리마소 - <秋夜月下>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원수가치 막힌담을 하루밧비 여러주소
역사없는 이모양을 하루밧비 여러주소 - <望鄕>

〈가을밤 달 아래서>(秋夜月下)는 아마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후 달라진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염려하여 지은 듯하고, <망향>(望鄕)은 황해도 고향에 두고 온 친척과 교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께 남북통일을 기도한 듯하다. 초/중/종장의 시조 형태 같기도 하지만 종장이 3.5.4.3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4.4조의 가사 형태로 쓴 것이 확실하다.
1973년 10월 21일 저녁예배 설교의 본문은 누가복음 14장 25-26절로 제목은 “주님 따르는 자의 짐보따리”(從主者의 行裝)인데, 설교원고 끝에 붉은 글씨로 가사가 실려 있다.

1. 밤이나 낮이나 눈물 머금고 / 내주님 오시기만 고대함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시든 주님 / 언제나 어느때나 오시렴니까
2.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 행여나 내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들고 하늘만 바라보오니 / 내주여 언제나 오시렴니까


이 가사를 설교 시간에 읊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한 줄을 띄어 붉은 글씨로 쓴 것을 보면 설교와 구분한 것은 확실하다. 85세 고령의 목회자가 설교 준비를 마치고 묵상하면서 신앙고백을 한 것인데, 자신의 신앙고백을 가장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찬송이 있으면 그 찬송을 찾아서 불렀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스스로 가사를 지어 읊조렸을 것이다.
가장 짓기 쉽고 읊조리기 쉽고 기억하기도 쉬운 문체가 4.4조의 가사이다.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함축하는 솜씨가 필요하지만, 가사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할 때까지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창작이 가능하다. 1970년대라면 고전문학의 시대는 아니지만, 젊었을 때에 가사를 들어본 세대는 여전히 자신의 신앙고백을 가사로 표현한 것이다. 이 경우에 저자가 염두에 둔 일차적인 독자는 당연히 하나님이고, 이차적인 독자는 저자 자신이었다. 이따금 기대치 않은 독자들이 읽어보며 공감할 수도 있었을 테고….

(허경진 :  1952년 출생. 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출처: 카페, 세상의 길 위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2017. 12. 11.]  4.4조의 가사로 표현한 기독교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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