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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청년회 뿌리교육 및 유적지 순례

청년회는 발족한 지 3개월 만에 제1회 뿌리교육 및 유적지 순례 행사를 2019년 6월15일(토요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실시했다. 이번 뿌리교육의 주제는 ‘고려시대의 양천 허씨와 양천 허문이 배출한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서 우의정을 역임한 미수 허목과 은거당’ 이었다. 

5월 한 달 동안, 청년회 밴드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18명이 참가 신청을 했으나, 출발 10일을 앞두고 최종 확인을 한 결과, 참가 희망자들의 수가 반으로 줄었다. 새롭게 생긴 개인 일정과 사정 등이 원인이었다. 이렇게 하여 최종 결정된 참가자 수가 7명이 되었는데, 일각에서는 인원이 너무 적으니 일정을 변경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청년회는 한 번 결정된 일정을 변경하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원래 계획한 대로 이 행사를 실시했다. 차량은 참가자의 인원 변경으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25인승 버스에서 11인승 미니 밴으로 변경을 했다. 

청년회 회장은 출발 1주일 전에 모든 교육 자료 및 방문지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여 청년회 참가자들에게 이메일로 미리 배포를 했다. 이 내용을 미리 읽어 본 후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또 질의응답 방식으로의 교육이 이번 행사의 질을 배가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가바위 앞에서)



대종회를 출발한 청년회 회원들은 회장이 미리 준비한 김밥과 음료수를 차에서 먹으며 방문지 및 일정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첫 번째 방문지인 허가 바위에서는 이 바위에 대한 전설과 함께 1968년에 촬영했던 사진을 현재의 허가 바위와 비교하며 이 일대의 지형을 함께 공부했다. 두 번째 방문지인 김포 설단지에서는 이 설단지가 만들어지게 된 연유 및 또 현재의 장소가 정해진 내용 등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시조부터 9세조까지 9분의 비만 세웠다가 10세조 문경공 할아버님의 비가 나중에 세워진 연유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물론 공부에 앞서 청년회 회장이 준비해 온 과일과 포, 그리고 술을 조상님들께 올리며 준비해 간 고유문으로 고유를 했다. 이번 뿌리교육 일정 중에는 김포 설단지를 비롯하여 연천 은거당 묘역, 파주에 위치한 대제학공 설단지, 충청북도 진천에 위치한 동주사공 설단지 이렇게 네 곳에 계신 조상님들을 참배하게 된다. 청년회 회장은 이 곳 조상님들께 대종회 예하 청년회의 설립을 고유하고, 또 예를 갖추기 위해 술과 함께 간단한 제례 음식을 각각 준비했다.  


(참배와 교육을 마친 청년회 회원들이 설단 앞에 모였다.)



김포 설단지를 떠난 일행은 고려 종묘인 숭의전으로 이동했다. 고려 종묘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하기 전, 모두는 숭의전 앞에 위치한 식당에서 손으로 만든 두부전골과, 동동주, 도토리묵으로 점심을 했는데, 이 점심은 허찬 대종회 회장이 청년회 회원들의 뿌리교육 참가자들을 격려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점심 식사가 감칠나게 맛있었던 것은 물론 동동주 또한 일품이었다. 


(숭선전 근처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



숭의전으로 옮긴 회원들은 고려 종묘가 원래는 개성에 있었는데, 이 쪽으로 옮겨오게 된 배경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원래는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여덟 분의 위패가 모셔졌었으나 네 분으로 줄게 된 사연, 등 고려의 역사와 함께 고려시대 속의 양천 허문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연천에 위치한 미수 허목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84호)이었으나, 묘역을 방문하기 전에 묘역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지척으로 보이는 북한 땅, 북한군 초소... 한반도의 허리 서쪽부터 동쪽 끝까지 철책선을 따라 세워진 총 12개의 전망대 중 이곳 태풍전망대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800m 밖에 떨어지지 않아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라 했다. 이곳 브리핑 룸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 이 일대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를 하고자 군인과 학도병들의 목숨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망대 앞쪽, 육안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산 아래의 작은 물웅덩이는 원래 큰 호수였는데 그 산을 차지하려는 우리 군과 북한 군의 폭탄 세례로 인해, 산이 무너져 지금은 초승달 모양의 자그마한 물구덩이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일대의 지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 곳에 위치한 실제의 북한군 GP, 그리고 우리 군의 GP 위치와 수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시끄러워 졌다. ‘북한군 GP 수가 우리 군의 GP 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데, 이러한 GP를 남과 북이 동수로 허물어 나간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고 우리가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하고 있다’며 수군 거렸다. 지척의 북한 땅을 뒤로하고, 미수 허목 묘역(은거당 묘역)을 방문했다.  


(은거당 묘역 잔디광장에서, 뒤로 보이는 언덕 위에 미수공 묘와 미수공의 할아버지 내외분, 그리고 징조할머니(양녕대군의 손녀), 고조할아버지 내외분 묘가 있다.)



미수공의 묘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묘역 주변은 아름다운 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주변 잔디는 물론, 나무 또한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곳은 양천 허씨 뿐만 아니라, 학계, 종교계, 유림 등 일년내내 손님이 계속 끈기지 않는 곳이다. 이곳 묘역 전체를 관리하고 있는 허중회(대종회 부회장)는 청년회 순례단 모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곳에는 양천 허씨 족보를 처음 편찬하기 시작했던 모재 김안국 선생이 찬한 동애 허자(좌찬성), 그리고 성호 이익이 찬한 미수 허목(우의정)의 신도비, 그리고 17세조인 허훈(합천군수)을 비롯하여 33세 허혁(국회의원, 초대 대종회회장)까지 미수공의 종손 들이 모셔져 있다. 세종대왕의 큰 형님인 양녕대군의 증손녀가 동애공의 배위였고, 영의정을 수 차례나 지낸 오리 이원익의 손녀가 미수공에게 시집을 온 내력, 글과 문장으로 유명한 백호 임제의 따님(미수공의 어머님)의 묘 등을 비롯하여 이곳에 위치해 있는 문인석을 비롯한 석물의 생김새 등 조선의 역사는 물론, 양천 허씨 역사뿐만 아니라 그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애공과 미수공의 신도비는 6.25 한국 전쟁 중에 모두 부서져 없어졌었는데, 초대 대종회 회장인 우석공이 노년에 그 내용을 친필로 다시 써 신도비를 세웠다. 특히 숙종대왕이 하사한 은거당(6.25 한국 전쟁 때 모두 소실)에 관한 이야기도 짧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대학자로서 양천 허문은 물론 전국의 모든 유림으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미수공께 청년회 회원들 각자가 잔을 정성스럽게 올렸다. 


(미수공 묘 앞에서, 미수공과 배위 전주이씨(오리 이원익 대감 손녀)가 합장되어 있다.)



미수 허목 묘역(은거당 묘역) 방문을 마치자, 허중회 대종회 부회장이 특별 음식으로 자연에서 놓아기른 큰 닭을 청년회 회원들에게 백숙으로 식당에서 대접했다. 해가 저문 후 파주 연수원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땀으로 젖은 몸을 간단히 씻은 후, 청년회 회장이 준비한 교육 자료로 약 1시간 30분에 걸쳐 고려시대와 10세조 문경공 할아버님의 가계 그리고 양천허씨 족보에 대한 뿌리 공부를 했다. 


(파주 대제학공 양안공파 묘역에서 / 11세 대제학공 허부를 위시하여 증손자인 14세 허균까지 네 분의 설단비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참가자 들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대제학공 설단지로 옮겨, 대제학공 할아버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대제학공 후손들의 파계 및 집성촌 등에 대해 파계도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이어 충청북도 진천 광혜원면에 위치한 동주사공파 묘역으로 이동을 하여 정오 쯤에 도착을 했는데, 동주사공파 중앙종회 허정진 회장을 비롯하여 동주사공파 하계 중파 회장 및 총무들이 멀리 경남 고성, 예천, 단양 등지로부터 와 청년회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큰 격려도 해 주었다. 이 곳 묘역에서도 묘역이 조성된 유래 등 이곳에 계신 분들에 대해 파계도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점심은 동주사공파 중앙 종회에서 청년회 방문단을 위해 특별 보양식인 닭 도리탕과 찜을 대접해 주었다. 이어 이번 유적지 순례의 마지막 행선지인 대한민국 최초의 사액서원이 위치한 경상북도 영주의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소수서원에 도착하니, 영주에 살고 있는 영주 문중 청년회 회원들과 허창규 회장님 이하 여러 분들이 청년회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영주 문중 청년회 회원들은 소수서원의 해설사 분에게 서원의 역사와 유래 등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여, 참석자 모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충북 진천 광혜원면에 위치한 동주사공파 묘역에서, 사진제공: 동주사공 단양문중 허은 종친)




(소수서원의 설립 배경과 서원 구조, 영정각 등에 대해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영주문중 청년회 회원들이 함께 했다.)




(좌측: 미수공의 영정 / 유복을 입고 있는 모습)



특히 이곳 소수서원 영정각에 들르니 미수 허목 할아버님께서 유복(儒服)을 입고 계시는 초상화가 걸려 있어 우리 모두가 양천 허씨 됨에 더 많은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영정각에는 성리학을 최초로 들여 온 안향 선생님을 비롯하여, 주희, 주세붕, 이원익, 이덕형, 허목 이렇게 여섯 분의 영정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사료관에는 안향 선생이 들여 온 성리학이 어떤 계보로 어떻게 전해 이어졌는지, 그 계보도가 있었는데, 그 중 퇴계 이황 -> 한강 정구 -> 미수 허목 -> 성호 이익 -> 녹암 권철신 ->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의 계보는 참석자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허원무 청년회 회장은 퇴계학파는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남학파의 한 갈래라고 설명을 하면서 미수공은 영남학파를 근기 지방(경기도)으로 갖고 왔다는 설명을 더했다. 영남학파에는 김종직 선생을 영수로하는 영학파, 이황을 중심으로 하는 퇴계학파, 남명 조식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남명학파, 여헌 장현광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여헌학파가 있다. 

사액서원에 대한 공부, 단종 복위 운동과 관계된 동주사공파 영주 문중의 이야기, 성리학의 계보 등 많은 공부를 한 청년회 회원들은 영주의 자랑인 한우고기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영주 청년회 회원 그리고 종친들과 서로 양천허씨의 뿌리, 역사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일족 간의 정을 더욱 더 두텁게 만들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일체는 영주 문중 청년회에서 제공했다. 


(영주 문중의 허창규 회장, 청년회 회원들이 서울에서 내려간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모습)



너무 짧은 1박 2일 간의 청년회 뿌리교육 겸 유적지 순례였지만 방문하는 곳 마다 많은 종친께서 성대히 반겨주시고, 또 모두 아낌없는 지원과 배려를 해 주셔서 금번 참가자들 모두 양천 허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긍지는 물론 일족에 대한 정을 더욱 더 두텁게 쌓을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청년회 회원 모두는 이번 행사에 큰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신, 허찬 대종회 회장님, 허중회 대종회 부회장님, 허정진 동주사공파 중앙종회 회장님 이하 하계 문중 회장님과 총무님, 영주 문중 청년회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제2회 청년회 뿌리교육 및 유적지 순례는 1년 뒤인 2020년 6월로 예정을 하고 있다며 많은 청년회 회원들이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허원무 청년회 회장이 전했다. 



대종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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