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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11월8일 고양시 행신동에서 出土된 領議政 허적(積) 여동생 양천허씨 할머니 유물.

1992년 11월8일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산1-13번지에서 청주한씨 주부 한순석(韓舜錫)에게 출가하신

당시 택지개발로 인하여 출토된 양천허씨 할머님의 친정 가계도를 보면  祖父 청백사(淸白史) 지중추부

사 허잠(潛)이시고 父는 府使 허한(僴) 이시며 오빠는 조선조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하신 묵제공

허적(積,광해군2년1610~숙종6년1680)이시다.1674년 숙종 즉위년 인선대비가 죽어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가 다시 일어나자 ,서인의 대공설(大功說 9개월설)에 맞서 기년설을 주장 하였다.그주장이 받아들

여져 다시 영의정으로 복귀한다.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남인이 청남,탁남으로 분열되자 탁남의 영수가 되

어 청남을 밀어 내었다.1676년 사은 겸 진주변무사로 청나라에 세번 다녀온뒤 오도도제찰사가 되었다.

庶子 허견(堅)의 모역사건으로 억울하게 화를 당하셨지만 식견이 넓으시고 총명한 재질로 충성을 다하

며 자기에게 내리는 왕의 은혜는 친구들에게 돌리고 녹봉으로 친구를 구제 하셨다고 하며 일찍이 사헌부

에 있을적에 이조판서 이경석 병조판서 이시백등의 인사부정을 과감하게 탄핵하여 백관들을 놀라게 하

였다고 역사는 전해진다.

여동생 양천허씨 할머님의 출토 유물은 의류 치마와 저고리 2건6점이며 이외 시신 영습에 사용된 것들라고 하며 관위에 덮혔던 명정(銘旌)외 구의(柩衣) 저고리4점 치마2점 五囊中 手 足囊 이불,베개,천금,지금 각1점 등 각종 유물들이 18점이나 발견 되었다고 한다. 본 출토 유물은 보공품(補空品)들로 몇점 안되지만 허씨 할머니의 당시 자신의 사회적 신분등으로 보아서 비교적 좋은 비단옷들이라는 점. 발굴당시 청주한씨 종중에서 소각되어 사라질 유물을 후세에 남겨 학문에 이용할수있도록 박물관에 기증하여 청주한씨문중에 감사 드린다는 고부자(高富子) 당시 박물관 연구원은 高陽市 幸信洞 出土 陽川許氏 遺物 小考라는 기고문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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