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後漢書]
요약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의 범엽(范曄)이 편찬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광무제(光武帝)에서 헌제(献帝)에 이르는 후한(後漢)의 13대 196년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남조(南朝) 송(宋, 420~479)의 범엽(范曄, 398~445)이 편찬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되어 있다. 광무제(光武帝, 재위 25~57)부터 헌제(献帝, 재위 189~220)까지 후한(後漢)의 13대(代) 196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인 ‘25사(史)’ 가운데에서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함께 ‘4사(四史)’로 꼽힌다.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하기 전에 오(呉, 222~280)의 사승(謝承), 설형(薛瑩), 화교(華嶠), 동진(東晋, 316~420)의 사마표(司馬彪, ?~306), 사침(謝沈), 원산송(袁山松), 장번(張璠) 등이 쓴 7종의 <후한서(後漢書)>가 전해지고 있었다. 범엽(范曄)은 432년(宋 文帝 元嘉 9년) 선성(宣城) 태수(太守)로 좌천되면서 7종의 <후한서>와 유진(劉珍) 등이 편찬한 <동관한기(東觀漢記)>, 원굉(袁宏, 328~376)이 쓴 <후한기(後漢紀)>,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등을 참고하여 <후한서(後漢書)>를 새로 편찬하였다. 범엽은 사료(史料)들을 새로 폭넓게 수집하고 비교, 정리하여 기존의 사서(史書)들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범엽(范曄)의 <후한서>가 편찬되면서 기존의 <후한서>들은 점차 읽히지 않게 되어 망실(亡失)되었고, 범엽(范曄)의 <후한서>가 후한(後漢)의 정사(正史)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범엽은 445년(元嘉 22년) 팽성왕(彭城王) 유의강(劉義康, 409~451)의 모반(謀叛)에 참여했다가 처형되면서 <후한서>의 지(志) 부분을 완성하지 못했다. 양(梁, 502~557)의 유소(劉昭)는 동진(東晋)의 사마표(司馬彪)가 편찬한 <속한서(續漢書)>에서 율력(律曆), 예의(禮儀), 제사(祭祀), 천문(天文), 오행(五行), 군국(郡國), 백관(百官), 여복(輿服) 등의 ‘팔지(八志)’ 부분에 주석(註釋)을 붙여 30권의 <보주후한지(補注後漢志)>를 편찬하였다. 이로써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이루어진 <후한서(後漢書)>의 체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북송(北宋, 960∼1126) 초기까지 <후한서(後漢書)>는 90권의 본기(本紀), 열전(列傳)과 30권의 <보주후한지(補注後漢志)>가 따로 간행되었는데, 본기(本紀), 열전(列傳)에는 당(唐, 618~907) 시대에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의 둘째아들인 장회태자(章懐太子) 이현(李賢, 654~684)이 붙인 주석(註釋)이 덧붙여 있었다. 북송(北宋) 진종(眞宗, 재위 997~1022) 때인 1022년(宋 眞宗 乾興 원년), 손석(孫奭)은 이현(李賢)이 주석(註釋)을 붙인 90권의 본기(本紀), 열전(列傳)에 유소(劉昭)가 주석(註釋)을 붙인 30권의 지(志)를 합하여 간행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후한서(後漢書)>의 판본(板本)이다.
<후한서(後漢書)>는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의 체례(體例)를 따르고 있으나, 표(表)가 없으며, 본기(本紀)에 황후기(皇后紀)를 따로 수록하였다. 열전(列傳)에 당고(黨錮), 환자(宦者), 문원(文苑), 독행(獨行), 방술(方術), 일민(逸民), 열녀(列女)의 7개 항목을 새로 둔 것도 특징이다. 청(淸, 1636~1912) 시대에는 <후한서(後漢書)>의 표(表), 지(志), 주(注)에 대한 보완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혜동(惠棟, 1697~1758)의 <후한서보지(後漢書補志)>, 왕선겸(王先謙, 1842~1917)의 <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 이자명(李慈銘, 1830~1895)의 <후한서집주(後漢書集注)>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후한서(後漢書)> 85권의 ‘동이열전(東夷列傳)’에는 부여(夫余), 읍루(挹婁), 고구려(高句驪), 동옥저(東沃沮), 예 (濊), 삼한(三韓), 왜(倭)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많은 부분이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의 내용과 일치하지만, 차이가 있거나 새로운 사실들도 많아 한반도의 고대사(古代史) 연구에 중요한 사료(史料)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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