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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호적정리관 허경(許京 : 송암공파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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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리 3인걸(漢東里 三人傑) 

         朴根培(남, 1941년생) 제보

 제주목 호적정리관 허경(許京 : 송암공파 29세)

  19세기 초, 중엽 한동리에 허호적, 고약국, 김순장이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지닐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세 분이 있었다.  예전에 한동리 서동네 허술(許述) 어른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 무렵 육지부에서 '강릉 정사장'이라는 석학(碩學)이 제주에 유람차 왔다가 노자(路資)가 떨어져 끼니마저 해결하지 못할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때마침 高厚吉 氏와 인연이 닿아 연명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고을의 젊은이들을 모이게 하여 여러 가지로 시헌을 해 본 일이 있었다. 그 중에 세 사람만  남도록 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 보낸 후, 각각 앞으로 해야 할 학문을 정해 주었다. 허경(許京)에게는 유학(儒學)과 더불어 호구(戶口)에 관해서만 공부하고, 고후길(高厚吉)에게는 의술(醫術)에 전념하라 하고 했고, 김경순(金京純)에게는 역술(易術)과 풍수지리(風水地理)를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 세사람은  훗날 다음과 같은 큰 일을 하였다고 한다.

  허경(許京 : 1805~1885)은 1864년 제주목 호적정리관(戶籍整理官)으로서 그 당시 全 濟州人의 戶籍을 整理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이 때부터 본명(本名)보다는 '허호적(許戶籍)'으로 상통(相通)하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러시아, 중국, 일본에 유학(留學)하여 우리 나라에 선진 문물을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3개 국어에도 능통하여 한양(漢陽)에까지 잘 알려진 통역관(通譯官)을 역임하였다. 또한 조선 말기의 제주 지역의 유학(儒學)을 전파하는 데 기여한 바 크다고 한다.

  장손(長孫)으로는 6세손(六世孫)인 허기수(許基洙) 씨가 한동리 서동에 거주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후손들은 현재 그 곳에 살고 있다.


  (이하 고후길 김경손 관련 기사는 생략)


[출처 : 둔지오름(漢東里誌), 북제주군 구좌읍 한동리, 1997년 3월 20일 발행]

 사진은 29세 가선대부 허경(許京) 묘소('허호적' 할아버지 묘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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