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었을 때부터 시를 좀 지을 줄 알았다. 손곡(蓀谷, 이달)에게서 이백(李白)을 배웠고, 당나라의 시 및 한유, 소식의 글을 작은 형남(하곡 허봉)에게서 배웠다. 그러다가 난리 속에서 비로소 두보를 읽혔으니 작은 재주에다가 부질없이 공력을 허비한 지도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얻은 글 쏨씨가 비록 옛 사람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성정을 읊고 물상을 아로새김에 있어 애쓰고 힘쓴 것이 또한 얕지는 않았다. 그래서 문장으로 지어진 것 가운데는 어쩌다 글이 아름다워서 볼만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비유하건데 연석(燕石)을 깊이 감추고 서박(鼠璞)을 남몰래 보물로 여기는 것 같으니, 끝내 볼 줄 아는 사람들의 한낱 웃음거리도 못될 것 같다. 평화롭던 시절에 북리집(北里集), 섬궁수창록(蟾宮酬唱錄)을 지었는데 난리 속에 다 불타 버렸다. 관동에 와서는 감호집(鑑湖集)을 지었는데, 벗들이 돌려보다가 잃어버리고, 금문잡고(金門雜稿) 한 책도 아이들이 보다가 망실하였다.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엉덩이를 두드리면서 애써 지은 것들인데 반이나 없어진 셈이다. 나에게는 어찌 아까운 생각이 없겠는가. 지남번 낙산사에 있으면서 우연히 기억난 시들이 있었는데, 열 가운데 벌써 일곱이나 여덟은 잊어버린 나머지였다. 세월이 오래 지나면 기억나는 것마저 차츰 잊혀질 것이기에, 책자에 써서 심심파적으로 삼아서 억기시(臆記詩)라고 이름을 지었다. 거억나는 대로 따라서 썼으므로 날짜의 앞뒤로 차례를 삼지 않았으니 보는 사람은 용서하시고 이것을 장독이나 덮지 말아주면 매우 다행스럽겠다.
[출처 : 허균전집 국역 성소부부고 1 시(詩), 장정룡 역. 2018. 12. 14.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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