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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의 성지(운림산방) - 양천허씨 일가 5대 소치, 미산, 남농...2020. 4. 23.

김려중의 풍수기행		 								남종화의 성지(운림산방) - 양천 허씨 일가 5대 소치, 미산, 남농...	 
  
산사랑(김려중) 추천 0 조회 167 20.04.23 18:38 댓글 0
        

   전라남도 광주쪽에 가면 어디를 가나 남화라고 일컬어지는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선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내리면 플랫폼에서 지하도를 통해 대합실로 걸어 나오게 되는데, 지하도 양 옆에 누군가의 그림들이 즐비하다. 시내의 카페에도... 변두리 음식점 모퉁이에도... 여지없이 그림이 걸린다.

다른 고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예향이라 자부하는 남도의 특별한 분위기이다.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許鍊)의 손자이며, 직업 화가 미산 허형(許瀅)의 아들인 남농 허건(許楗)선생이 광주, 목포쪽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연유아닌가 싶다.

  남농 허건은 남종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시켜 남농 특유의 새로운 화풍을 일구어 낸 화가이다. 특히 거친 선으로 빚어낸 소나무의 생동감있는 필선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역작으로 전해진다. 


  북종화에 대비되는 동양화 양대 분파의 하나인 남종화는 문인화라고도 불리는데, 북종화가 채색위주의 사실성을 중시하는 반면 남종화는 수묵위주의 추상성이 강하다.


  우리나라의 남종화는 시, 서, 화에 능했던 조선의 대표화가 소치 허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소치의 화풍은

아들인 2대 미산 허형(1852~ 1931),

3대 남농 허건(1907~ 1987)과 그 동생 임인 허림(1917~ 1942)에 이어

4대 임인의 아들 임전 허문(1941~   ),

5대 남농의 장손 오림 허진(현 전남대학교 미대교수)으로 이어지며, 양천 허씨 일가 직계 5대가 200여 년에 걸쳐 10명의 화가를 배출하며, 소치의 화혼과 남종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주가 있었다. 20대에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그림첩을 보면서 그림과 글을 익혔다. 30대에 초의선사의 소개로 한양으로 올라가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다.

​  추사는 나중에 소치의 그림에 대해 “압록강 동쪽에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거나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는 찬사를 보냈다. 소치는 문인화를 중심으로 특유의 필치를 구사하며 일세를 풍미했던 남종화의 대가이다. 허련의 호 소치(小痴)’도 추사가 내려줬다. 중국의 대화가 대치 황공망과 비교한 아호였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 진도로 내려와 화실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그 곳이 진도를, 나아가 남도를 예술의 고장으로 승화시킨 유서 깊은 운림산방이다. 운림(雲林)이란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당호이다.


  소치는 여기서 미산 허형을 낳았고 미산은 남농을 낳았다.

그리고 이 집에서 대를 이어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남종화의 본거지가 되었다.

진도에서는 개도 붓을 물고 다닌다거나 허씨들은 빗자루나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들 양천 허씨 일가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가 직계 5대가 펼친 서화예술은 200년에 걸친 화맥이다. 진도는 대한민국 민속문화예술특구이다. 군내에 운림산방과 소치기념관을 비롯 장전미술관, 소전미술관 등 현재 9개 미술관이 문을 열고 있으며, 국전 입선작가를 150명이나 배출했다. 또 진도 출신으로 생존해 있는 국전심사위원, 특선작가가 80명이나 된단다.


  진도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많은 선비들의 유배지였다. 진도군청이 발간한 <향토문화대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귀양간 사람은 약 700여 명인데 그 중 140여 명이 진도로 내려왔다. 산이 험한 함경도로 보내진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그들은 한양에서 영화를 누리며 살던 사대부가의 문인, 학자, 명필, 사상가들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이 땅에서 시름을 떨쳐내기 위해 시, 서, 화로 소일하며 낯선 땅에 문화적 자양분을 남겼다. 진도의 문화예술이 활짝 꽃 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진도는 소치, 미산, 남농 외에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의제 허백련, 서예계 거목 소전 손재형, 장전 하남호선생이 진도출신이었고, 국악인 김성녀, 전임 예총회장 하철경화백도 진도가 고향이다.


  운림산방은 소치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기슭에 지은 화실이다. 소치는 이 곳에서 꿈에 어리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소치실록'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지금의 산방은 소치가 생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부채산수화로 그려 놓은 것을 보고 복원한 것이다. 후덕한 첨찰산 자락 운림산방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탐랑 목성의 문필봉이 일품이다.













[출처 : http://cafe. daum. net/ipungsu, 202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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