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장서각마태오 ・ 2019. 8. 11. 9:47"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만권의 서책 중에 좀벌레가 돼 책 읽는 즐거움으로 노후를 즐길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 " 허균이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 을 완성하고 쓴 기문의 일부다. 1602년 강릉부사 유인길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친구 허균에게 공납하고 남은 명삼을 주자 허균은 사사로이 쓸 수 없고 고을 선비들과 같이 써야 한다며 중국으로 가는 사신 일해에게 부탁하여 귀중한 서적을 구해오도록 했다. 당시 만 권이나 되는 전적으로 고향으로 보내 경포 호반에 있던 누각 하나를 비우고 이 서책을 소장케 한 다음 고을 선비 누구에게나 빌려 읽도록 했다.
도서관 역할은 세종 때 집현전에 장서각이 있었고, 홍문관에 등영각이 있어 도서를 수장했지만 한정된 중앙관원에게만 현장에서 열람이 가능했다. 호서장서각은 허난설헌 고택으로 전하는 인근으로만 추정할 뿐 그 터는 확실치 않으나 우리나라 사설도서관의 시초이자 인문도시 강릉을 낳게한 계기가 되었다.
< 2019. 7. 15, 강원일보, 전 오죽헌 시립박물관장 정항교 기고문 중에서 >
허난설헌 생가 뒤 수백년 된 소나무 숲길에 ' 호서장서각 터 ' 가 있습니다. 경포호가 바라보이는 솔 숲에 사설도서관을 만들었던 허균을 상상해봅니다. 책을 만들기 어려웠고, 돌려보기도 어려웠던 시절, 호서장서각이, 허균이 받았던 책, 사오거나 소장한 책을 빌려주고 돌려보며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과 여론의 메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절이 불교의 상징이라면,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공유의 산실입니다. 허균은 가고 없어도 호서장서각터는 남아 심금을 울립니다.
입력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되거나,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폭력성 글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수정·삭제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