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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방석순], 202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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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2020.06.04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가장 먼저 만나는 선생님입니다. 가장 친근하고 미더운 선생님입니다. 어떤 과목에 통달해서가 아닙니다. 무슨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언행 하나하나가 교육인 것이지요. 때로 사랑의 매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치고, 인성을 길러줍니다.

우리 어머니도 참으로 엄한 훈육주임이셨지요. 덤으로 배운 것도 있습니다. 훈육주임의 방심이었을까요. 어머니의 감성이 여과 없이 실린 노래였습니다. 솔직히 아주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무슨 자장가를 들려주셨는지, 무슨 노래를 자주 부르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니가 일감을 손에 든 채 혼자 흥얼거리시던 노랫가락들이 마치 머릿속에 끌로 파놓은 듯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만고의 고전 ‘타향살이’입니다. 1934년 김능인(金陵人) 작사, 손목인(孫牧人) 작곡, 고복수(高福壽)의 목소리로 처음 발표된 이 노래는 일제하에서, 6·25동란으로 고향을 잃은 수많은 실향민들의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마흔의 나이에 다섯 아이들을 이끌고 홀로 피란길에 올랐던 어머니의 사정에도 꼭 들어맞는 노래였습니다. 이목구비 반듯했던 어머니는 주위의 끊임없는 재가 권유도, 아이를 더러 남의 집에 주라는 권유도 뿌리치고 혼자 힘으로 우리들을 키워내셨습니다. 그 어머니가 코끝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시름에 젖어 이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이 뒤늦게 철이 든 저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희망가’와 ‘한강수타령’도 빼놓을 수 없는 어머니의 레퍼토리였지요. 마치 한숨처럼 새어 나오던 어머니의 노래들을 동란 와중에 핏덩이로 안겨 내려온 막내가 절로 익힐 정도였습니다.

정말 어머니에게서 배운 노래라면 ‘클레멘타인’이 있습니다. 다소 엉뚱한 미국 민요입니다. 아마도 피란살이의 시름을 잊으려고 남녘땅에 흘러 다니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자연스레 익히셨던 모양입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클레멘타인’은 원래 금광을 찾아온 광부가 어린 딸이 물에 빠져 죽어서 슬퍼하는 노랫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어머니에게는 어부와 딸의 노래로 둔갑하고 말았습니다. 원 노랫말의 3절엔 이런 구절도 들어 있지요.

매일 아침 9시 그녀는 오리들을 물가로 데려갔었지
그런데 그만 나뭇조각에 발이 걸려 거품 이는 바다에 빠져 버렸네
루비 같은 입술이 곱고 부드러운 방울을 내뿜었지
하지만 난 헤엄을 못 쳐 클레멘타인을 잃고 말았네

알려진 바로는 작곡가 박태준(朴泰俊, 1900~1986)의 형 박태원(朴泰元, 1897~1921)이 처음 이 노래를 소개하면서 우리 정서에 맞게 가사를 만들어 붙였다고 합니다. 성악과 작곡에 재능을 보이던 박태원은 안타깝게도 24세에 폐병으로 숨졌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명곡도 있지요.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드보르작( (Antonin Dvorak, 1841~1904, 체코)의 노래입니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어머니가 내게 그 노래 가르쳐 주실 때
이따금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아이들에게 그 노래 가르쳐주노라니
내 추억의 보석함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곤 하네.

노랫말처럼 곡도 애조를 띠고 있습니다. 아마도 드보르작이 어린 자식을 셋이나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담았기 때문일 겁니다. 1875년과 이듬해 그는 아이들 셋을 잃는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1880년 같은 보헤미아 출신 민족시인 헤이두크(Adolf Heyduk)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집 ‘집시의 노래’ 가운데 네 번째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노랫말이 생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때때로 혼자 집에 있을 때, 요즘처럼 코로나로 바깥출입은 줄고 홀로 있는 시간은 늘어날 때 가족들, 형제자매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하모니카로 불어보곤 합니다. 어머니 차례엔 ‘타향살이’, ‘클레멘타인’을 주로 부릅니다. 거짓말처럼 가족들이, 어머니가 가까이 느껴집니다. 그런 게 노래의 마력이 아닐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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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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