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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22세 허완

대종회는 이달의 인물로 병자호란 당시 쌍령 전투에서 아군이 크게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2세 충장공 허완을 선정했습니다. 

1636년 청 태종이 직접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사건이 병자호란입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순식간에 평양을 지나 열흘 만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거의 근접하게 됩니다. 청의 대규모 공격에 조선군은 맥을 추지 못했고, 청군이 한양으로 점차 다가오자 인조는 대신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으나, 청군 기병들은 한양에서 강화도로가는 길목을 이미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인조는 방향을 남한산성으로 틀어 피신을 했습니다. 당시 인조를 호종한 병사 등 남한산성에도 약 1만여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기시작 했습니다. 이에 인조는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군대를 이끌고 상경해 지원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전해들은 영남좌도절도사 허완은 영남우도절도사 민영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경기도 광주 쌍령에서 청군과 전투를 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군사들이 대패하고, 민영 또한 전사하자 허완은 자결을 했습니다. 

1937년 1월 28일에 벌어진 이 전투는 남한산성으로부터 불과 20리 정도 떨어진 쌍령에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어쩌면 패배가 당연히 예고돼 있었던 전투였는지 모릅니다. 1월 27일 쌍령에 도착한 군사들은 다음날인 1월 28일 남한산성으로 진격하기로 하고 부대를 둘로 나누어 쌍령의 양쪽 산등성이에 진을 쳤으나, 서둘러 북상을 하느라 물자와 장비가 많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군사들은 엄동설한에 얼마나 많이 지쳐있었겠습니까? 

이에 반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진을 치고 있던 청나라 군사들은 휴식도 충분히 취했을 것이고, 또 식량과 병기 등 모든 물자를 잘 건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아군들의 경우 화약 등 물자가 너무 부족하여 포수들에게 화약을 2냥씩만 지급했는데, 조선군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해 나타난 청군 선봉대 33명에게 총을 함부로 쏘는 바람에 화약을 거의 다 써 버렸다 합니다. 물론 청군 33명은 섬멸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약이 떨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청군은 허완 장군 진영으로 일제히 공격을 했고, 당황한 조선군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서 패전을 하고 말았습니다. 민영 장군 진영은 조금 더 오래 버텼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결국 병사 대부분이 죽음에 이른 것은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1월 28일이라 함은 음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올해의 경우 양력 2월 21일이 음력 1월 28일이니 허완 장군이 쌍령 전투에서 돌아가신 날이 됩니다. 이러한 연유로 2월의 인물로 허완 장군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병자호란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1월30일, 인조는 세자 등 500여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인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소현세자와 빈궁, 그리고 둘째 아들 봉림대군 등이 청나라의 인질로 북경으로 가 약 10년 동안 지내게 됩니다. 청나라에게 끝까지 반기를 들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 또한 포로가 되어 잡혀갔는데 심양에서 모두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만명 이상의 양민들이 청군의 전리품으로 청나라에 끌려갔는데 (어떤 기록은 수만이 아니라 수십만으로 표시하고 있음.) 훗날 일어난 속환(贖還)은 부녀자의 경우 이혼문제의 대두 등 사회/정치/경제 전반적인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만들어진 고아 등, 모든 전쟁이 다 그렇겠지만 병자호란 역시 백성들의 삶을 크게 후퇴시켰습니다.  

이로써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할 때까지 청나라에 복속되는 관계를 만들게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 힘이 없으면 이러한 고초를 격게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북한은 핵무장을 강행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등의 열강들 속에서 현재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라 생각됩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6.25 한국전쟁도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오직 하나의 일념으로 우리 부모님들께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 전해준 대한민국...  우리 양천 허씨들 또한 순국선열들과 조상님들의 정신을 잘 받들어 대한민국의 안녕과 양천 허문의 미래 세대를 위해 정진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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