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보(文臣輔)
[요약정보]
이명(異名) | 문충걸(文忠傑)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활동분야 | 기타 > 지방세력가 |
[상세내용]
문신보(文臣輔)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 토호(土豪). 고려 공민왕 때 탐라의 왕자이다. 일명 문충걸(文忠傑)이라 불렸다.
1372년(공민왕 21) 3월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나자 최영(崔瑩)이 탐라로 건너가 난을 진압하였는데, 최영이 떠난 이듬해인 1374년(공민왕 23)에 제주도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다시 난을 일으켰다. 차현유는 관아를 불태우고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 임완(林完)과 제주목사 (濟州牧使)박윤청(朴允淸) 및 마축사(馬畜使) 김계생(金桂生) 등을 살해하였는데, 목호의 난을 평정할 때 살아남은 잔존 세력까지 합세하여 반고려‧반명(反明)의 성격을 띠면서 더욱 확대되어 갔다. 이때 왕자인 문신보(文臣輔)와 성주(城主) 고신걸(高臣傑)이 진무(鎭撫) 임언(林彦) 및 천호(千戶) 고덕우(髙德羽) 등과 함께 이 반란을 진압하였다. 또한 명(明)에 조공할 말 50필을 아우 문신필(文臣弼)을 파견하여 고려에 보내기도 하였다.
1372년(공민왕 21) 3월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나자 최영(崔瑩)이 탐라로 건너가 난을 진압하였는데, 최영이 떠난 이듬해인 1374년(공민왕 23)에 제주도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다시 난을 일으켰다. 차현유는 관아를 불태우고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 임완(林完)과 제주목사 (濟州牧使)박윤청(朴允淸) 및 마축사(馬畜使) 김계생(金桂生) 등을 살해하였는데, 목호의 난을 평정할 때 살아남은 잔존 세력까지 합세하여 반고려‧반명(反明)의 성격을 띠면서 더욱 확대되어 갔다. 이때 왕자인 문신보(文臣輔)와 성주(城主) 고신걸(高臣傑)이 진무(鎭撫) 임언(林彦) 및 천호(千戶) 고덕우(髙德羽) 등과 함께 이 반란을 진압하였다. 또한 명(明)에 조공할 말 50필을 아우 문신필(文臣弼)을 파견하여 고려에 보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절요
제주사인명사전
증보탐라지
제주고씨 홈페이지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제주사인명사전
증보탐라지
제주고씨 홈페이지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조양원
기록에는 탐라왕자 문신보(臣輔)로 되있음.
기해보 기록 내용
18세 휘 허효명(孝明)
世宗 기미(己未 1439년)생 려절교위(勵節校尉) 행용양위 부사과(行龍驤衛 副司果) 濟州 舊左面 終達里 宗木岩方雙奉 乾坐 配 南平文氏 父 司直 文眞謹 祖 文仲德 曾祖 文臣輔 外祖 省厚.
19세 휘 허영필(榮弼) 은량(殷良) 世祖11년 乙酉(1465)生 진용교위 墓 정의세화(旌義細花) 配 경주김씨 世祖13(丁亥1467)生 父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중리(仲理) 祖 千戶 김신용(申用) 曾祖 校尉 김안(安) 外祖 司直 順興安氏 안인우(仁友).
* 표해록에는 진무(鎭撫) 김중리(仲理)나옴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