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眉叟) 허목(穆)의 칠언 절구
기허춘장(奇許春長) 춘장(春長) 허격(格)에 부치다.
孤根分幹 展雙技 고근분간 전쌍기
외로운 뿌리에서 줄기가 나누어져 두가지로 벌어지니
太極無刑萬里隨 태극무형만리수
태극은 형체가 없어지지만 온갖 이치가 따르네
始覺生生便是易 시각생생편시역
천지가 끊임없이 만물을 만들어 내는 이치가 곧 변화
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으니.
伏義深意物先知 복의심의물선지복희씨의 깊은 뜻을 만물이 먼저 아는구나.
文貞公派 22세 허회(淮)의 5男.
許格
요약 조선 중기의 처사(處士)로 가평군수 이제두, 유생 백해명 과 함께 조종암에 숭명배청의 뜻을 담은 글귀를 새겼다.
출생-사망 1607 ~ 1691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춘장(春長)이며,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문정공(文正公) 허침(許琛)의 5대손이다. 정묘호란 때 후금(後金)과 강화를 맺은 일에 비분강개하며 산 속에서 은거하였으며, 한때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항전하려 하였으나 이미 조정에서 청나라에 굴요적인 항복을 한 뒤였다. 이후 단양(丹陽)의 둔산(遯山)에 은거하며 스스로 창해처사(滄海處士)라고 칭하였다.
1684년(숙종 10) 가평군수로 부임한 이제두(李齊杜), 유생 백해명(白海明)과 교유하면서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논하며 향명배청(向明背淸)의 뜻을 다졌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원조한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받은 수모를 잊지 말자는 뜻을 바위에 새겼다. 맨 위에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의 어필인 '사무사(思無邪)'를 본뜨고, 그 아래에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과 효종이 내린 글귀를 송시열(宋時烈)이 쓴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道遠 至痛在心)'을 새겨놓았는데, 이 바위를 조종암이라 부른다.
조종암 아래의 연못 위에 작은 단(壇)을 설치하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의 기일에 북쪽을 향하여 곡을 하였으며, 북벌(北伐)을 추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孝宗)의 기일이 되면 슬피 울며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사후에 문신·학자로 명망 높은 박세채(朴世采)가 명정(銘旌)에 대명처사(大明處士)라고 썼으며, 유생들이 주청하여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참조항목
허침 조종암, 백해명, 이제두
출처: 허격 [許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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