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각산금암미술관 ‘매화전-허백련, 허달재’ 展
할아버지 야매도·묵매도부터
손자의 현대적 홍매·백매까지
남종문인화가의 진수 선보여
허달재 “할아버지는 내 스승
잘 살아야 잘 그린다 가르쳐”
당(唐)대에 이르러 선불교에 ‘남종선(南宗禪)’이니 ‘북종선(北宗禪)’이니 남북 분파가 생긴 것처럼 산수화도 남종화와 북종화로 갈라졌다. 돈오(頓悟, 단번에 깨달음)에 입각한 남종선처럼 화가의 영감을 중시하는 문인 사대부들의 그림은 남종화로 규정됐고, 점수(漸修, 차츰 닦아 깨달음)의 북종선과 마찬가지로 기법 연마를 중시하는 화공들의 그림은 북종화로 구분됐다.
남종화는 조선에 전래돼 남종문인화 등으로 불리며 조선 후기 겸재나 단원의 진경산수화와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현재 심사정(1707~1769)이나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 등에 의해 독자적인 화풍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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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춘설헌에서 생전의 의재 허백련(왼쪽)과 젊은 시절의 허달재 화백. 의재미술관 제공 |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매화전-허백련, 허달재’ 전시가 은평구(구청장 김미경)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김시업)에서 운영 중인 삼각산금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26일까지 계속될 전시에는 마지막 남종문인화가로 일컬어지는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의 그림 세 점과 생전 모습 사진 두 점, 그리고 의재의 맏손자이자 제자인 직헌(直軒) 허달재(許達哉, 1952~) 화백의 작품 10여 점이 전시된다.
남종문인화 계보는 추사에게서 사사한 후 진도로 낙향, 운림산방에서 제자 양성에 힘쓴 소치 허련(1808~1893)과 그의 후손인 의재, 남농 허건(1908~1987)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의재의 야매도(夜梅圖)와 묵매도(墨梅圖) 등 매화 향이 그윽한 작품들은 담백한 필묵에 격조 높은 문인 정신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사군자라고 부르며 군자의 품성을 빗대어 지칭했다. 그중 매화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꽃으로, 고결하고 운치 있어 남종문인화가들이 즐겨 그 품격을 화폭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의재와 허달재 화백 작품도 대부분 매화를 그린 것이다.
허 화백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부인 의재의 광주 무등산 기슭 ‘춘설헌’에서 가법인 호남 문인화를 공부하고 홍익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따라서 허 화백의 작품에선 남종문인화가 현대적 의미의 한국화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허 화백은 “의재 할아버지는 ‘작가는 인품을 갖고 그린다’ ‘네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네 삶을 잘 살아야 한다’ ‘네 삶을 잘 살면 저절로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늘 강조하시며 6세 무렵 동양화의 필법이 아닌 서예부터 먼저 가르치셨다”고 말했다.
미술관에 전시된 허 화백의 작품은 흐드러지게 핀 홍매는 물론 백매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홍차 찻물을 들인 고풍스러운 화지 위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들이어서 한겨울에도 화사함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전통에 현대적인 기법과 감각을 가미한 작품세계가 엿보인다.
한편 인근 은평한옥마을 내 한문화 너나들이센터에서는 옛 책의 표지를 꾸미는 데 사용됐던 능화판(菱花板)과 서책, 그리고 이를 모티브로 문화 융합을 시도한 사진작품을 전시하는 ‘능화판-우리 책문화의 멋’ 전도 열리고 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출처: 문화일보,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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