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2세 同知義禁府(동지의금부) 휘 허용(容) 의 묘표.와 23세 휘 허쟁(崝)의 행장.

* 위 사진을 클릭하면 다운로드 됩니다.

공께서는 1573년(선조6)에 아버지 병조참판 허용(容) 과 어머니 태조 공신 풍양조씨 조암(趙巖)의 따님 사이에 태어나시고 할아버지는 호조참판 허기(芑)이시다. 공께서는 선조39년(1606)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정묘호란(1627년)이 일어나자 임금을 강화도에 위장으로서 호종하였다.병자호란(1636)에는 네승(內乘)겸 선전관으로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가 호종공신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오르시고 절충장군,첨지중추부주요관직을 두루 역임 하시고 1641년(인조19년)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벼슬길을 접고 전려(田廬)에서 자제들과 함께 글공부를 하며 지내시다가 1652년(효종3)에 80세에 자헌대부.1662(현종3) 90에는 정헌대부를 제수 받았으며 다음해 정월(正月)17일에 일기를 마감 하시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노촌공(蘆村公) 허식(寔),죽촌(竹村公) 허주(宙),이시고 왜란(倭亂)때 등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지내시고 병자호란시 정축년 정월3일에 쌍령전투에서 장렬이 전사하신 충장장 허완(完) 이시다.추밀원사 채보문 의 따님이신 정부인 인천채씨는 공보다 23년 먼저 졸하시고 슬하에는 3남1녀가 있다.공께서는 아버지와 정부인과 함께 경기도 광주 우산동 소산(蘇山)에 같이 모셨으나 봉분(封墳)은 훼손되고 미수공 허목(穆)할아버지가 찬하신 묘표는 계곡으로 나뒹굴어 흉한 모습이 되었다.

경자년 새해에는 하루 빨리 복원이 되어서 묘소에 참배 할수 있는 날이 오길 학수고대한다.



목록

댓글 목록

입력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되거나,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폭력성 글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수정·삭제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