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을 나무란 미관말직 허굉조선 초기의 학자 허굉이 태어나기 전 날 그의 집 앞을 지나가던 어떤 중이 말했다.
“내일 이 집안에 귀한 아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재상이 될 것입니다.”
이튿날 과연 아들이 출생했는데, 큰 아버지 허종(許琮)이 말했다.
“내 뒤를 이어 훌륭한 인물이 될 자는 바로 이 아이다.”
허굉(許硡)은 성장하여 성종때 진사에 합격하고 연산군때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반정 때에는 사인으로
승진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날 허굉은 궁궐에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승지로 있던 이우, 윤장, 조계형이 개구멍으로 도망을 쳤다.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자신들도 공신에 기록되기를 요구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행위를 비난했다.
허굉은 비난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공훈을 빼앗아 버리자 모든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겼다.
작서의 변이 일어났을 때 허굉은 중종임금에게 아뢰었다.
“근일 옥사가 공평하게 판결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송질이 나서서 항변했다.
“신이 위관이었는데 무슨 일이 공평하지 못했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임금은 그저 웃기만 했다.
나중에 송질은 허굉을 불러 꾸짖어 말했다.
“옥사를 의논하는 것은 정승의 일인데, 그대가 어찌 미관말직으로 감히 말하는가?”
“미관말직에 있는 사람은 정승의 말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허굉이 반문하자 송질이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허굉은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함경도·평안도 관찰사를 지냈다.
1520년 조윤손이 여연·무창에 정주한 야인을 정벌할 때 그를 후원, 큰 공을 세워 예조판서에 올랐다.
평안도 관찰사에 재직 중 사망하였다.
(출처)~이 글은 봉산서당 블로그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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