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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같이 살다간 허난설헌의 숨결, 2019. 3. 8.

난초같이 살다간 허난설헌의 숨결
강릉 땅을 밟고 있자니 조선시대에 27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이슬이 된 난초처럼 살다 간 여류시인 허초희(허난설헌)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녀는 강릉시 초당동에서 태어났다. 15세 어린 나이에 경상도 보수적 안동김씨 가풍의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비극적인 짧은 생을 살다갔다. 눈물로 점철된 고된 시집살이를 글로 승화시켰다.
강릉의 명물인 ‘초당두부’의 ‘초당’은 허초희와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진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인 ‘초당’에서 따온 이름이다. 강릉 초당두부는 불린 콩을 곱게 갈아 면포에 내린 다음, 팔팔 끓는 콩물에 천일염이 나지 않는 강릉에서 소금 대신 바닷물을 미리 떠다가 불순물을 가라앉힌 후 간수로 부어 응고시키는 게 특징이다.
  
▲ 허난설헌 동상
어릴 적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출중했던 허난설헌은 조선에서 매우 독창적인 시를 창작해서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친 여성이다. 시름시름 앓다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우라’고 유언했다. 여성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지 않던 안동김씨 가문에선 과감히 모두 원고를 불태웠지만 동생 허균은 누이의 천재성을 안타깝게 여겨 강릉 본가에 남겨둔 허난설헌의 시와 측근에서 소장했던 시 200여 편을 모아 <난설헌집>을 엮는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 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의 시 ‘감우(感遇: 느낀 대로 노래한다)’  전문
양반가의 여성에게 조차 글을 안 가르쳤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고 책을 읽는 며느리를 시가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겼고 냉정했다. 심각한 고부갈등과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 등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 허난설헌은 남성 중심에 파문을 던지는 시를 쓰고, 때론 현실에 없는 신선의 세계를 꿈꾸며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했다. 친정아버지와 오빠가 객사하고 자신의 두 아이도 돌림병으로 죽자 비애감으로 점차 건강을 잃고 쇠약해갔고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시대 최초의 한글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과 최고의 여류시인인 난설헌 남매의 작품은 강릉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 전시돼있다. 허난설헌의 생가에 들어서면 그녀의 못다 한 예술혼이 떠다녀서 일까? 솔향기가 유난히 그윽하다. 꽃피는 봄날에 차 한 잔을 곁들이고 매화향기 그윽한 생가 터를 거닐어 보면 어떨까.
안목항에서 커피 한 잔의 위로
바다부채길을 걷고 초당두부로 속을 다스리고 솔향기 맡으며 허난설헌 생가를 거닐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이색적인 커피숍이 즐비한 안목항으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이름도 낯선 이국적인 커피숍들이 다닥다닥하다. 커피를 즐기는 공간의 번식력은 대단하다. 순한 아메리카노도 좋고 거품 향 가득한 카푸치노도 좋다. 기왕이면 나를 위한 최고의 성찬, ‘에티오피아산 예가체프’의 한 잔의 부드럽고 달고 신맛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지. 취향에 맞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동해를 정원처럼 바라보며 음미하는 맛은 일품일 테니. 마음 시린 날에 커피 한 잔은 위로를 준다.
서울-강릉 간 KTX 열차가 개통되면서 강릉으로 향하는 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청량리에서 1시간 반이면 닿는 거리다. 당일여행으로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출처 : 농촌여성신문, 2019.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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