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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휘 관(冠)을 파조로 모시고 있는 판도좌랑공파 종중은 지난 10월 27일(일요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에 새로 조성한 판도좌랑공파 설단지에서 시제를 모셨다.
핀도좌랑공파 종회는 새로 조성한 설단지가 서울로부터 떨어져 있는 관계로 버스 2대를 대절하여 강동구 소재 대종회에서 출발을 하게 함으로서 제관들의 참례 편의를 도왔다. 이날 시제에는 제주도를 포함핳여, 부산, 진주, 광주, 전주 등 전국에서 약 160여명의 제관들이 참석하여 제례 행사를 더욱 뜻 깊게 만들었다.
판도좌랑공파 설단지(이 설단지에는 판도좌랑 11세 휘 관(冠), 공(公)의 아들, 12세 휘 백(伯), 12세 휘 교(僑)를 위시하여 공(公)의 주손(胄孫)인 13세 휘 경(絅), 14세 휘 금(錦), 15세 휘 기(愭), 16세 휘 비(扉), 17세 휘 손(蓀) 이렇게 8분의 비가 세워져 있다)는 지난해까지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소재 제양군 묘역 선산 옆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포천시-세종시 간에 새로이 조성되고 있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판도좌랑공파 설단지 옆에 들어서는 바람에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었었다.
설단지 이전과 관련하여 판도좌랑공파 종회는 판도좌랑공파의 큰 집인 상우당(충정공)파 하계의 돈동녕공파, 또는 제양군파 선산으로의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로 인해 결국 이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둘째 집인 문정공파 하계 문중과도 접촉을 했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게 되어 결국 15세 휘 기(愭)의 둘째 아드님인 자산공 휘 추(樞)의 후손 충장공 문중의 종산으로 이 설단지를 이전하게 되었다.
22세 충장공 휘 완(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초당공 허엽(曄)의 큰 형님인 휘 구(昫)의 손자로 인조 14(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해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을 때, 영남좌도절도사였던 공(公)은 보병 1만 여명을 이끌고 영남에서 남한산성으로 진군하던 중, 경기도 광주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를 만나 싸웠으나 많은 병력을 잃고 패하자 책임을 통감하며 그곳에서 자결을 했다. 임금이 후일 이 소식을 듣고, 공을 병조판서에 추증했으며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새로운 설단지로의 이전 및 공사와 관련하여 많은 도움을 준 충장공파 문중 종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이전 공사를 진두 지휘하며 시제 전날까지도 잔디를 심느라 애쓴 허경행 판도좌랑공파 종회 회장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판도좌랑공파 종회 총무
허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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