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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대신 찾아온 폭염 장막 [김수종]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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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대신 찾아온 폭염 장막

2025.07.04

‘마카운데볕 중놈대가리 깨진다’는 제주 속담이 있습니다. 장마 한가운데 햇볕이 들면 오히려 더 매섭다는 뜻입니다. 투박한 말투이지만, 그곳 사람들이 변덕스러운 장마철 날씨를 묘사한 표현입니다.

7월 1일, 서귀포시 산방산 앞 용머리 근처 바닷가에 사는 옛 고향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줄줄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이 속담을 되뇌는 것이었습니다. 한라산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그날, 제주시 구좌읍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5.7도였습니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집니다. 예년 같으면 7월 하순에나 찾아오는 무더위가 장마를 밀어내고 일찍 나타났습니다. 텔레비전 일기예보 시간마다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지도가 전국을 벌겋게 물들입니다. 햇볕이 땅에 닿으면서 열을 일으키는 복사열로 인해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조차 숨이 턱턱 막힙니다. 더위를 먹어 앓는 온열환자가 500명에 이르고, 죽은 사람도 벌써 전국에서 서너 명 나왔다고 합니다. 올여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울 지경입니다.

지구촌 전체가 폭염으로 아우성입니다. 프랑스 파리는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고, 연중무휴로 개방했던 에펠탑 꼭대기 층을 임시 폐쇄했다고 하네요. 안전에 이상은 없으나, 탑 철근이 40도가 넘는 열로 팽창해 약간 기울어질 수 있다는 보도에 관광객들이 걱정하자 내린 조치인 듯합니다.

스위스 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 1기를 가동 중단했습니다. 원자로를 식히는 강물의 수온이 25도에 이르러 냉각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폭염으로 알프스 산에 걸려 있는 빙하가 마을로 쏟아져 내리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빙하 연구가 잘되어 있어 붕괴 직전 정부가 주민들을 대피시켜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알프스 빙하를 관광자원으로 먹고사는 스위스 사람들은 급속히 줄어드는 빙하를 보며 걱정이 적잖다고 합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마주한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은 초여름부터 시작된 폭염으로 단전 등 비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낮 최고기온이 45도를 넘고 있으니,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으로 이주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지구촌 곳곳을 덮치는 폭염은 ‘열돔 현상(heat dome)’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형성된 고기압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그 아래 뜨거운 공기가 갇히는 기상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폭염은 북대서양 고기압이 장마를 몰고 오는 오호츠크 저기압을 밀어내고, 한반도 상공에 열돔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 돔 아래 있는 한국은 폭염이 쏟아지고 장마비도 내리지 않는 것이죠.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늘에는 열을 가두고 비를 막는 장막, 돔이 쳐져 있는 셈입니다.

유럽에서 열돔 현상이 더 커지는 이유는,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어 지중해를 비롯한 유럽 대륙 상공에 열돔이 쉽게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 기상학자들은 장마가 사라지고 있거나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이제는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판이라고 말합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맞고 있는 셈입니다. 19세기 이후 기상데이터를 분석한 기후 연구가들은 이렇게 폭염이 심해진 것이 1970년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제 인류는 이런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류 스스로 대기 중에 쏟아내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미, 화석 에너지를 지금처럼 계속 쓴다면 지구 기온은 더욱 올라가고, 결국 지구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5년, 지구 기온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세계 195개 나라가 모여 ‘파리기후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화석연료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폭염이 쏟아져야, 얼마나 홍수가 넘쳐야, 얼마나 태풍이 세어져야, 얼마나 큰 산불이 일어나야, 얼마나 큰 흉년이 들어 더 배고파야, 인류가 이 중독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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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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