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가을에 듣는 프라하의 봄2024.11.05하늘이 높고 햇볕이 따스한 10월 말 일요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실내악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중부유럽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2024년 서울국제음악제(예술감독 류재준)는 비엔나(여름)를 비롯한 중부 유럽 4개의 도시와 4계절을 엮어 음악제를 조합했습니다. 이날 공연은 프라하의 봄이었고,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실내악 곡들이 연주되었습니다. 바로 옆 콘서트홀에 비해 크기가 작아 연주자들의 현이나 피아노 소리가 더 섬세히 들려 좋았습니다.한 번밖에 다녀오지 못했지만 체코는 역사, 음악, 문학 분야에서 자주 접하며 친근감이 드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등을 떠올리면 가을도 어울릴 것 같은 프라하가 봄과 짝지어진 것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독재의 획일적 체제에서 벗어나려던 열망에 힘입어 1968년 초 프라하는 변혁의 봄을 맞았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8월 소련과 바르샤바 동맹국 탱크가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을 제압하며 일장춘몽은 무참히 끝났지요. 프라하의 봄 열망은 19년 후인 1989년 소련 체제의 몰락 즈음 일어난 벨벳혁명으로 드디어 실현됩니다. 공산주의 독재정부가 무너졌고,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평화적 합의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 후 두 나라가 EU에 가입해 이제 민주적인 선진 유럽의 일원이 되었습니다.스메타나의 피아노 3중주(Op 15)로 시작하여 드보르작의 관악 8중주 세레나데(Op 44), 그리고 피아노 5중주(Op 81)로 마무리된 음악들은 가을과 잘 어울리는 짙은 보헤미안 색이었습니다. 전날 수위가 높은 인제 내린천에서 카약을 타고 온 터라 몸이 좀 피곤해 음악회 중반쯤 집중력을 잃으며 십여 년 전 프라하 여행의 이런저런 장면들이 음악 소리와 어우러지며 떠올랐습니다.Defenestration... . 사람을 창밖으로 던지는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특이한 단어를 크고 고색이 깊으나 화려하지는 않은, 프라하를 가 본 사람 대부분이 방문했을 프라하 성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창밖으로 던져 살상하는 일은 구약성서 때부터 드문드문 있던 일이나 1618년 5월 프라하에서 있었던 일(The Defenestration of Prague)이 특히 유명하고,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프라하 성 한편의 큰 홀에서 당시 체코 지역을 지배하던 보헤미아 왕국의 카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과 충돌을 풀어보려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회의 중 신교도들이 카톨릭 대표들을 창밖으로 내던졌고, 이 사건이 중부 유럽 전역의 국가들이 휘말린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합니다.프라하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시가지 광장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세워진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크고 멋진 동상이 있는데, 그의 추종자들도 ‘창문 투척’을 실행했습니다. 후스는 체코 신학자로 마르틴 루터보다 약 100년 전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정부패를 강하게 비판하고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주장하다 파문당한 후 1415년에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후스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후스주의자)들이 1419년 감금된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프라하 시의회 의원들을 시청 창문 밖으로 던졌던 것이지요. 프라하 성의 사건보다 약 200년 앞서서 벌어졌던 일입니다.-(왼쪽) 서울 예술의전당 감나무와 음악회 프로그램 /(오른쪽) 카를교와 프라하 성 야경프라하 성은 또 프란츠 카프카의 기억을 품고 있지요. 성 후미진 곳에 위치한 연금술사의 골목, 황금소로(黃金小路) 22번지는 그가 작업실로 사용했다는 작은 집 주소입니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로 협소한 골목의 카프카 기념품 가게에서 영어판 ‘성(城)’과 얇은 단편 소설집 ‘시골의사‘를 샀지요. 먼 옛날에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는 연금술사들도 거주하던 곳이라는 야사(野史), 협소한 골목과 건물들은 카프카가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기괴한 이야기나 장소를 소설에 등장시킨 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인 그가 결핵으로 1924년에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10여 년 후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은 그의 여동생들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웠습니다.성 안에 위치한, 10세기에 처음 세워졌다는, 성(聖) 조지 성당의 실내악 공연도 떠올랐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 엄청난 높이의 석조 벽과 목재 천장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홀에서 있었던 현악 4중주 공연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생각나지 않지만 연주회 분위기나 음향은 어떤 멋진 공연장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죠. 프라하는 나름의 음악적 전통도 풍부할 뿐 아니라 1787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초연했을 만큼 19세기 전후 비엔나와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합니다.체코의 순탄치 않은 역사는 중부 유럽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같은 강대국들과 긴 국경선을 공유하고, 국경 북쪽의 개신교와 남쪽의 카톨릭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것에 연유한 바 커 보입니다. 외세의 풍파에 시달린 한반도와 닮았습니다. 곡 해설문에 따르면 일요일 공연의 첫 곡이었던 피아노 3중주를 쓴 스메타나는 ‘민족주의 체코 작곡가로 보헤미안 민족 음악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지요. 오스트리아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에 참여한 연유로 스웨덴으로 피신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큰딸 죽음의 충격 속에 썼다는 3중주에는 어둡고 우수에 찬 부분, 딸의 장난스러움을 묘사하는 듯한 밝은 부분이 혼재합니다. 이어지는 드보르작의 음악들은 널리 사랑받고 있는 그의 다른 실내악, 관현악곡들처럼 보헤미안 정서가 짙었습니다. 필자는 그의 현악 4중주를 특히 좋아합니다.청명한 가을날 약간 피곤한 몸으로 아름다운 보헤미안 음악을 벗 삼아 프라하여행을 가물가물 상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서울국제음악제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필자소개허찬국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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