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율곡연구원에서 받은 글을 옮깁니다.


  유명 인사와 점심을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수억 원대의 돈을 기부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다. 돈을 쓰고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선인 중 한 분이 교산 허균(許筠: 1569~1618)이다. 강릉시 사천면 애일당에서 태어났고, 뒷산의 지명을 호로 썼다.
  허균과 필자의 인연은 강릉단오제에서 비롯되었다. 허균이 계묘년(1603)에 강릉 대도호부에 들렀다가 강릉단오제를 목격하고 남긴 기록은 현재 강릉단오제가 존재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역사, 실증, 구성 등등의 여러 방면에서 허균의 글이 인용되었고, 강릉단오제의 확고부동한 증거였다.
  허균의 강릉 사랑이 남달랐던 점은 그의 저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가 남긴 저작 중에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양과 질 면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허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실려 있는데 제목부터 흥미롭다.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크게 다신다’라는 말로 실제로 먹지는 못하고 먹는 흉내를 내며 자족한다는 뜻이다. 「도문대작」에는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의 음식과 식재료 등 20여 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경포호에서 난다는 조개, 제곡이다.

  齊穀, 小蛤紫甲. 鏡浦有之, 凶年食之則不飢, 故名之.

  의역하면 “제곡(齊穀)은 작은 조개로 껍질이 자색(紫色)이다. 경포호에서 나는데 흉년에는 이것을 먹으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곡식을 수확해 늘어놓은 것 같다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자색의 작은 조개, 제곡. 참으로 묘한 이름이다. 소싯적 수중생물에 관심을 두었던 필자에게 제곡은 뭔가 알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허균의 기록과 비슷한 조개로 필자가 알고 있는 조개는 적곡(積穀)이었다. 경포호에서 나는데 근래까지도 적곡으로 불렸다. 명칭의 의미 또한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라는 뜻으로 제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전국의 현지 답사를 토대로 서술한 『택리지(擇里志)』에 경포호의 유래를 기록하면서 적곡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도 적곡은 흉년을 피해 갈 수 있는 곡식이었고 경포호는 서민들에겐 곡식을 쌓아둔 ‘광’, 창고로 표현되고 있다. 『택리지』는 1751년, 「도문대작」은 1611년에 발간되었으니 제곡이 적곡보다 140년 앞선 기록이다. 하지만 장소, 이름과 그 의미에서 제곡과 적곡은 같은 조개를 가리킨다고 판단된다. 특히 적곡은 근래까지 사용하던 말이기에 이글에서 적곡을 대표로 쓴다.
  오래전에 경포호 근처에 사는 지인 집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집 한쪽에 커다란 조개무덤이 있었다. 아마도 생활 쓰레기를 모아 놓은 곳으로 보였다. 함께 간 이들은 그것을 보면서 선사시대 조개무덤 즉, 패총(貝塚)이라며 발굴 조사해야 한다고 함께 웃던 기억이 있다. 지인은 어려서 어머니가 그릇 하나를 주시며 ‘적곡을 잡아오라’고 하시면 채집망을 들고 쏜살같이 경포호로 달려가 모래흙을 헤치고 적곡을 채취해 왔다고 했다. 금방 큰 그릇으로 하나는 채울 수 있었다고 했다. 민속 답사 중에 경포호 적곡(積穀)조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 기억 한번 떠올리고 흘려보내곤 했다.
  몇 해 전 사진작가협회 강릉지부의 원로작가 강인흥, 김진안 두 분의 전시회를 마련한 적이 있다. 70~80년대 작품을 회고한 작품들이 주류였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진안 위원은 양양의 석호 포매호에서 아낙들이 뭔가를 줍고, 한 소녀가 아이를 업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적곡’을 잡는 사진이라고 하셨다. 조개가 거므스름하고 작은 데 엄지 손톱만한 것도 있다며 경포호에서도 많이 잡았었다고 하셨다.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조개가 또 있으니 ‘째복’이다. 동해안 얕은 모래에 서식하며 작은 조개류로 대부분 민들조개류와 칼조개이다. 민들조개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가 가장 많고 패각의 무늬도 여러 가지이다. 동해안 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이 발로 모래를 파헤쳐서 잡을 수 있는 조개의 대부분이다.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어 조개탕, 칼국수 등 육수 위주로 요리되어 식탁에서 볼 수 있다. 가끔씩 행운으로 칼조개가 발끝에 걸려 나오는데 학명은 접시조개이다. 흰색으로 날렵하고 민들조개에 비해 두 세배 크다. 속이 크고 달아 맛있지만 오래 끓여도 육수가 우러나오지 않아 구이나 찜에 많다.
  바다에 서식하는 째복을 언급하는 이유는 어민들은 작은 조개를 보면 어림잡아 ‘째복’이라며 대충 넘기기 때문이다. 더욱이 째복은 얕은 바다에 서식하기 때문에 잡기 쉽고 대량으로 생산되어 서민들의 양식이었다. 이런 째복을 음차하고 비슷한 의미를 가진 한자로 옮긴다면 제곡이나 적곡이라고 적었을 것 같다.
  허균은 「도문대작」 서문에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라면 먹지 못할 것이 없었고, 나물이라면 씹지 못할 것이 없었다고 여기게 되었다.’며 전국의 진미를 소개했다. 하지만 ‘제곡’은 그 맛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고 식재와 그 의미에 대해 간략히 정리했다. 그러나 「도문대작」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허균이 그 맛을 보고 별미, 특별한 맛을 가졌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보릿고개를 넘기고, 흉년의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생명줄을 ‘미식의 소재’로 삼기엔 허균의 애민정신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의 맛, 서민들의 맛을 기억하고자 했던 허균의 고민을 담아야 제곡의 진미가 아닐까?
  허균이 맛을 남기지 못한 사연과 의미는 다르지만 적곡의 맛은 이제 많은 돈을 주어도 접하기 어렵다. 이미 오래전부터 적곡은 남쪽 섬진강과 중국산 재첩조개에 밀려 동해안 석호에서는 생산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생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석호의 수질 오염으로 적곡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고 거의 멸종단계라고 단언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적곡을 채취할 수 있었던 곳은 고성의 송지호이다. 송지호에서는 적곡과 같은 조개를 재첩이라고 불렀는데 6월초부터 7월 중순까지 약 40일 동안 집중적으로 조업했다. 주민들의 연 소득이 가구당 400만~5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생산과 번식사업이 활발했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재첩(적곡)은 급격히 자원이 감소했고 재첩 채취 자체가 금지되었다.
  동해안 석호에서 적곡이 사라지는 이유를 물이 흐르지 못하는 데서 찾는 이들이 많다. 물이 고이면 수초도 제대로 생육하지 못한다는 것이 석호와의 삶에서 얻은 답이기 때문이다. 물이 고여서 썩어가는 호수에서는 적곡 종패를 뿌려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늘 뒷전이다.
  직경 1~2cm의 엄지손톱만 한 작은 조개이지만 시원한 재첩국, 재첩칼국수, 재첩 무침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되어 식탁 위에 올랐었다. 조혈과 해독작용이 뛰어나 피로, 숙취 해소에 좋아 애주가들의 해장국으로 으뜸이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그 감칠맛과 향은 최고였다는데.
  경포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경포대작(鏡浦大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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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허세광

작성일 : 2024-09-21


안광선 실장님의 제곡(齊穀), 적곡(積穀), 그리고 째복, 경포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다,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걸어서 3~4km를 달려가면 예조참판 김광철 문숙공(文肅) 초당曄字 처가댁 강릉 애일당<(교산 허균공 탄생지)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날이 얼마 없어 세월의 흐름을 애석하게 여기며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아래 사천진리 뒷섬 은빛백사장 바닷가에 도착한다, 푸른 바닷물에 첨벙이기 위해 더위도 잊은 채 달려갔던 생각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이유는 발로 바다 물속 모래를 파헤치고 발가락으로 째복을 잡기 위해서다. 잡아서 뜨거운 백사장에 놓아두면 죽기 때문에 한없이 밀려오는 파도, 물가에 구덩이를 파고 두었다가 얼른 집에 가지고 오면 어머님께서 얇은 안반에 밀가루를 홍두깨로 밀어서 호박을 '송송'썰어 ‘째복국’에 손칼국수 그 맛, 1주갑이 헐씬 지났지만 군침이 돈다, 지나간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공유하고자 옮깁니다. 교산공의 '도문대작'은 '최초의 시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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