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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공파 36세 허찬국 박사의 칼럼, 2024.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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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잡범으로 보는 해리스

2024.07.26

2024년은 세계적으로 선거가 많은 해입니다. 그중 미국의 선거가 제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상하 의원(하원 전체, 상원 일부)과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11월 초에 예정돼있습니다. 4년 전 선거의 다시 보기인데, 당시도 나이가 지긋했던 후보들(1942년생 바이든, 1946년생 트럼프)이 네 살씩 더 먹었으니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식상해 하는 내용의 촌평을 흔히 들었습니다. 며칠 전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 사퇴 발표와 함께 1964년생 현 부통령 해리스(Kamala Harris)가 민주당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갑자기 미국 대선은 흥행 대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쉬운 상대라 호언했던 그 해리스가 아닌 듯합니다.

급작스런 반전의 계기는 6월 말 바이든과 트럼프 간의 TV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여준 무기력하고 좀 넋 나간 모습이었지요. 여느 때처럼 이어지는 트럼프의 과장과 거짓 정보 넋두리에도 효과적으로 반박하거나 바이든 정부의 치적을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바이든에 호의적 입장이지만 그의 나이를 문제 삼아 재선 출마를 말리던 논객은 물론, 그와 친분이 있고 바이든 정부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뉴욕타임스의 토마스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 등도 경악하여 현직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바이든은 반전을 시도했지만 대선은 물론 연방의원 선거 참패를 우려하는 민주당 정치인들까지 사퇴를 촉구하자 결국 용단을 내려 사퇴했습니다.

바이든이 후보사퇴와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직후부터 해리스 지지세 확장이 의외로 드셉니다. TV토론 참사 후 논평가들은 민주당에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정하기보다, 잠룡 후보군이 8월 하순에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 때까지 단기간 선거운동을 하게 한 후 전당대회에서 최종적으로 후보를 추대하라고 훈수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부통령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구석에서 자리만 지키는 역할이 많아 역량을 평가절하 받는 경우가 흔합니다. 즉, 해리스의 흥행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전당대회까지 경선을 하자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바이든 사퇴발표 후 며칠 사이에 민주당 상하 의원, 주지사들 약 90%가 공식적으로 해리스 지지를 선언하면서 기대를 초월하는 응집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리스의 강점, 여성 임신결정권과 공권력 집행자 이력

트럼프를 상대할 해리스의 경쟁력은 뚜렷합니다. 오랜 기간 여성의 임신결정권을 보장했던 판례를 공화당 정치색이 물씬한 대법원이 뒤집은 이후 낙태권은 여성 유권자 사이에 민주당이 이기는 중요 이슈입니다. 해리스는 이미 대법원의 번복이 트럼프 탓이라고 공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역임한 검사 출신이며 범죄에 강성이라는 평가도 해리스의 큰 강점입니다. 바이든 등 타 후보와 경합했던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당내의 진보파에게 해리스의 공권력 집행자 경력은 비판의 대상이었지요. 당시 경찰의 무분별한 총기 사용과 폭행으로 아프리카계 사상자들이 계속 발생하자 ‘Black Lives Matter’구호와 시위가 번졌고, 경찰에 대한 반감이 치솟은 때였지요.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성향의 일반 유권자들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강성 이미지(Harris the Cop)는 긍정적 자산이죠.

해리스는 최근 유세 연설에서 트럼프의 범법 전력을 직격했습니다. 자신이 주 법무장관 시절 트럼프가 했던 것처럼 순전히 돈 벌 목적으로 엉터리 대학을 세워 운영하던 것을 문 닫게 했고, 34개 항목의 회계부정 유죄판결을 받은 트럼프와 같은 금융회사들의 불법을 엄단했으며, 검사 시절에는 성범죄자들에게 엄하게 죄를 물었다고 웅변했습니다. 트럼프의 과거 성추행과 연루된 민사소송의 패소,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 등을 빗댄 내용이죠.

자신의 전력(前歷)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법무장관이 되기 전에는 검사로서 약탈자, 공갈·사기꾼들을 단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부류를 잘 압니다. 유세를 통해 나와 트럼프의 기록을 대비하겠습니다(..., I was a prosecutor who took on predators, fraudsters, and cheaters. So I know Donald Trump’s type. In this campaign, I will put my record against his).”

해리스 등장과 트럼프 자질문제 본격적 부각

전문가들은 해리스에 대한 지지가 짧은 기간에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은, 나이 문제 등 제약 요인 때문에 그동안 바이든이 트럼프의 결점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던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안도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 트럼프가 대통령감이 안 되는지, 이에 비해 해리스의 어떤 점이 강점으로 부각되는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두 가지가 돋보입니다.

첫째, 트럼프는 단순히 공익(公益)과 사익(私益)의 경계가 모호한 것을 넘어 사익을 공익에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7월 11일 뉴욕타임스의 사설 ‘Donald Trump Is Unfit for a Second Term’에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공직자들이, 오래 벼슬을 하고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재산이 없어 퇴임 후 무너져가는 두 칸 초가에 사는 것을 보고 인조가 집과 토지를 주었다는 조선시대 청백리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이 될 수는 없겠지요. 미국 대통령들도 퇴임 후 저술이나 각종 활동으로 재산을 늘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재임 기간에 사익을 우선시한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선 대통령의 결정이 사익을 감안하여 왜곡되었더라도 이를 알 수가 없고, 설령 참모나 내각이 알더라도 문제제기를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재임 후반에 법무장관을 지내며 충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바(Bill Barr)는 퇴임 후 저술한 책에서 트럼프를 ‘자신의 이익과 에고의 만족을 국가의 이익을 포함해 어느 것보다도 우선시할 사람'이라고 신랄하게 평했습니다(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사설 참조). 가까이 보좌했던 고위 공직자들의 트럼프에 대한 엄중한 부정적 평가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는 트럼프 사위의 행보입니다.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사위 쿠슈너(Jared Kushner)를 백악관 고위 참모로 임명했는데 중동 지역 관련 정책을 관장했습니다. 그런데 쿠슈너가 백악관에 재직하는 기간에도 중동 산유국들이 어려움을 겪는 그의 회사에 투자를 했고, 특히 퇴임 직후 중동의 투자자들이 약 25억 달러(약 3.4조원)나 되는 거액을 그의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공직자가 퇴임 후 현직 때의 인연을 사업에 이용하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쿠슈너의 경우 투자 규모나 시점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둘째, 트럼프의 기회주의적 인종차별주의자 행보입니다. 그의 주된 메시지는 2016년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불법이민자들로 인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이민자들이 우리의 피를 오염시킨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독일인의 피가 유태인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라고 했던 히틀러를 연상시킵니다.  지난 대선 때 멕시코 불법입국자들을 ‘강간범들’이라고 비하했습니다. 일부 무슬림 국가 사람들이 미국에 오는 것을 막겠다고 했고, 당선 후 이를 시도했지만 이런 차별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과 함께 종식되었지요. 이번에는 불법입국자들을 대거 단속해 수용소에 가두고, 또 국외로 강제 추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실제 범죄 데이터를 보면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많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미국 경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늘어난 일자리를 이민자들이 낚아채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미국 태생 근로자의 실업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크루그먼 뉴욕타임스 2014.7.23. 칼럼 ‘Immigration Is Great for Jobs, Actually’). 유색인종 이민자 부모의 딸 해리스가 트럼프의 인종주의 편견을 깨는 데 적임자로 보입니다. 그게 역사적 정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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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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