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이순신 박경리 윤이상의 바다 [김수종], 2024. 7. 16.

www.freecolumn.co.kr

이순신 박경리 윤이상의 바다

2024.07.16

역시 여름에는 바다가 좋습니다. 아름다운 바다라면 한려수도가 떠오르고 그 중에서도 한산도를 품은 통영 바다가 압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친지의 초청으로 아내와 함께 그곳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말투로 '바다의 땅 토영'을 2박3일 간 구경했습니다. 한려수도 삼백리 물길 굽이굽이가 절경이 아닌 곳이 없지만, 미륵도(彌勒島) 바닷가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스페인풍의 'ES클럽'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6월 바다 경치는 눈이 시리게 매력적이었습니다.

통영ES클럽에서 보는 다도해 풍경

통영 태생 박경리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 첫머리에서 그의 고향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는 맑고 푸르며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나폴리를 가본 적이 없어 감이 잘 안 잡히지만 오늘날 통영 사람들이 '동양의 나폴리'라고 자랑하는 취지에 공감하게 됩니다.  

나는 화가 이중섭이 그렸던 서귀포 섶섬 일대 해안 경치가 최고라고 생각해 왔는데, 미륵도 ES클럽에서 쪽빛 바다 위에 녹색 섬들이 봉긋봉긋 떠있는  풍광을 보고는 나의 평가엔  고향 프리미엄을 너무 높게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기간 중 서귀포에 이어 통영에 1년 남짓 머물며 바다를 그렸으니 아름다운 해변에 대한 노스탤지아를 가진 화가였던 듯합니다.

배를 타고 한산도 제승당을 들러보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461m)에서 다도해를 조망하기도 했습니다. 초청자 가족과 함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해변 카페에서 라테(우유)를 마시며 일몰을 구경했습니다. 나전칠기의 대가 김성수 미술전시관을 보고 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해안가를 드라이브하면서 그칠 줄 모르는 운전사의 통영 자랑을 실컷 들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뚫었다는 해저 터널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바다의 땅'이라는 별칭이 통영에 썩 어울려 보였습니다.  

하루 아침은 시장 골목에서 졸복탕을, 이튿날 조반은 '시락국'을, 저녁은 택시기사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맨밥을 김에 말아 놓은 충무김밥으로 때웠습니다. 모두 통영의 별미 음식이라고 합니다. 생선뼈를 갈아 만든 육수에 시래기를 넣어 끊여 조리한 시락국은 통영식 시래기국입니다.  

이런 볼거리 먹거리 탐방도 좋았지만 통영은 인간의 얼이 느껴지는 곳이어서 더 의미가 깊은 듯했습니다.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음악가 윤이상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통영의 쪽빛 바다를 보고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창작혼을 길렀을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붙여진 충무라는 이름은 없어졌지만 통영은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초반 대승을 거두었던 한산대첩의 현장인 한산 앞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요즘 용어로 치면 해군 함대사령부 격인 한산도 제승당은 오래전 두어 번 가 보았지만 이번 뱃길은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통영 포구에서 제승당을 왕래하는 배편은 시대를 반영하는지 조타실 전면에 농협 로고를 달아붙인 한산농협 소속 카페리였습니다. 갑판에는 타륜 모양의 포토존을 설치해놓았는데 타륜기둥에 달아놓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이순신의 시구가 배 이름인지 홍보 문구인지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수요일이어서인지 배는 텅 비었고 차를 탄 주민들이 몇 명 보였습니다. 제승당 부두에 내리니 크게 써붙인 플래카드가 눈길을 잡았습니다. '한산섬 누구네 집 딸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승당에 한 시간가량 머물렀는데 네댓 명의 관광객을 보았을 뿐입니다. 제승당을 독점해서 구경한 셈입니다. 제승당 관광을 하려면 주중이 좋을 것 같습니다.  1592년 임진년 한산도 주변을 잠시 떠올려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무인(武人)이지만 문인(文人)감성도 지녔던 이순신에 어울리는 바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관광객에 떠밀려 다녔으면 아마 그런 상상을 할 여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

 (왼쪽)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한산도 앞 바다 / (오른쪽) 통영국제음악당 (오른쪽 건물)

배를 타고 건넜던 한산도 앞바다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한산도와 미륵도 사이에 펼쳐진 이 바다가 이순신이 학익진(鶴翼陣) 전술로 왜 선단을 대파했던 한산대첩의 장소입니다. 현대 해군의 눈에는  항공모함 한 척이면 꽉 차버릴 바다에서 왜 선단과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수군의 배 1백여 척이 맞붙어 죽어라 백병전을 벌였던 4백여 년 전 전투 장면이 동네 아이들 병정놀이와 비슷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쏜살같이 물살을 가르는 어선 한 척을 보며  '만약 저 배가 그때 나타났다면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놀라 기절초풍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

(왼쪽) 윤이상의 묘소. (건물은 음악당) / (오른쪽) 미륵도에서 본 일몰

윤이상을 기념하여 2004년 건립한 통영국제음악당은 위치도 건축미도 매우 돋보였습니다. 윤이상을 배출했기에 통영이 이런 음악당을 만들고 많은 국제음악회를 열어 음악 애호가들을 불러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리면 표가 쉽게 매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하니 통영은 음악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곳에서 공연한 외국 연주자들은 다시 초대해 달라고 한다는데요, 그 이유는 연주장 시설도 마음에 들지만 바로 옆 고층호텔에 투숙해서 수려한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연주 노동'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통영에서 자란 윤이상은 독일에서의 작곡활동으로 유럽 음악계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음악보다는 동백림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강제송환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지자 독일정부와 국제인권단체의 구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국제적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한과 남한을 자유로이 왕래하며 음악활동을 하고 싶어 했던 소위 경계인이었지만, 반공정권의 눈에는 친북 인사였던 겁니다. 이런 연유로 그는1950년대 통영을 떠난 후 생전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1995년 독일에서 사망하자 그곳에 묻혔다가 2018년  민주화된 고국에 유해로 돌아와 이 음악당 경내 바닷가에 안장되었습니다.

통영 시내에 윤이상기념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 전시관에서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귀가 아닌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시관 초입에서 눈길을 끈 것은 오페라 '심청'의 초연 장면 사진입니다. 사진에는 "1971년 독일에 귀화한 윤이상은 1972년 오페라 심청으로 뮌헨 올림픽의 서막을 열었다."는 설명 문구가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아끼던 첼로가 유리벽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고 윤이상이 첼리스트였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남긴 어록도 전시관 벽면에 붙어 있습니다,

"서양의 음은 마치 연필로 그어진 직선처럼 들리지만 아시아의 음은 붓글씨의 획과 같아서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합니다." 서양 음악과 동양 음악의 다름을 표현한 이 말은 음악에 조예가 없는 사람에겐 이해가 아니라 그저 멋있지만 추상적으로 들릴 뿐입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갔던 일을 회상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배에서 배로 이어졌습니다. 남도창이라는 침울한 노래인데 수면(水面)이 그 울림을 멀리까지 전해주었습니다.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통영의 음악 도시 이미지는 윤이상 덕분인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음악당을 비롯한 시설물 이름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걸 보니 윤이상은 죽은 후에도  이념의 경계선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왼쪽) 오페라 심청 초연장면 / (오른쪽) 통영 박경리 기념관

박경리 기념관은 미륵도 산속 도로변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통영을 구경하기 한 달 전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을 보았기 때문에 두 도시가 박경리를 얼마나 다르게 기념하는가 하는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원주 '박경리문학의 집'은 규모도 컸지만 해설도 전시도 소설 '토지'를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설사가 박경리의 생애,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에 작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 토지 주인공 설정이 할머니가 무릎에 앉히고 들려준 '호열자가 휩쓸고 지나간 거제도 대지주의 손녀 이야기'에 유래했다는 등등 풍부한 배경 정보를 들려주어 참 좋았습니다.

'토지'는 박경리를 상징하는 소설이니만큼 통영 박경리기념관도 토지 전시실이 크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초기 작품 '김약국의 딸들' 전시실이 규모와 내용에서  풍부하고 관람객도 많았습니다. 전시실 한가운데 유리관 속에 김약국 가게 위치가 표시된 옛 통영 시가지를 재현한 모형도를 전시하고 있는 게 이 작품에 대한 통영 사람들의 애착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소설 작품에 대한 소개보다 1965년 유현목 감독이 만든 영화 '김약국의 딸들'에 대한 소개가 더 요란했습니다. 벽면이 그 당시 포스터들로 채워졌는데 엄앵란 최지희 이민자 황정순 김동원 허장강 등 60년대 은막을 누볐던 인기 스타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엄앵란을 제외하면 다들 저세상 사람들이니 영화 역사의 한 토막을 보는 듯했습니다. 말씨로 보아 인근 지역에서 온 듯한 중년 아줌마들 네댓 명이 영화포스터를 열심히 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게 비슷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계획을 갖고 간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이순신 박경리 윤이상의  얼이 흐르는 '바다의 땅 통영'을 구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네시간 남짓 달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오가며 '우리나라도 좁지 않구나. 정말 산이 많은 나라구나.'하고 새롭게 느껴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통영구경을 아직 못해 본 자유칼럼 독자들이라면  통영을 한번 구경하기를 권합니다. 헐레벌떡 시간에 쫓기는 관광은 하지 말고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목록

댓글 목록

입력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되거나,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폭력성 글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수정·삭제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