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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기념일 단상(斷想) [방재욱], 2024. 6. 11.

‘호국보훈의 달’ 기념일 단상(斷想)

2024.06.11

보리는 익어 먹게 되고 모를 심는 절기인 망종(芒種, 5일)과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 21일)와 함께하는 6월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들을 가슴에 새겨 담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보훈(護國報勳)’에서 '호국(護國)'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며, ‘보훈(報勳)’은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많은 국가유공자들의 공훈과 그 유족을 예우하기 위해 1963년에 지정된 '호국보훈의 달'에는 ‘의병의 날’(1일), ‘현충일’(6일), ‘6·10만세운동’과 ‘6·10민주항쟁’(10일), ‘제1연평해전’(15일), 6·25전쟁일(25일), ‘제2연평해전’(29일) 기념일이 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일에 ‘전쟁기념사업회’가 1989년 삼각지에 건립한 ‘전쟁기념관’을 참배하고 순국선열에게 헌화한 뒤 호국보훈 기념일들에 대한 단상(斷想)을 가다듬어봅니다.

6월 1일 ‘의병의 날’은 적의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싸운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기념일로 2010년 2월 국회에서 의결되어 지정된 날입니다. 6월 1일은 임진왜란 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1592년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6월의 첫날로 정해져 2011년부터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6월 6일 ‘현충일(顯忠日)’은 1955년 5월 26일 법령으로 6월 6일을 참전용사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62년 국회에서 ‘현충일 법’이 제정되면서 현충일로 공식 지정된 법정 공휴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일로 올해 69주년이었습니다.

현충일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해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 추념행사에 맞추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묵념하는 현충일 묵념 사이렌이 1분간 울립니다. 전쟁기념관 방문 시 묵념 사이렌이 울릴 때 경건한 마음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묵념에 동참했습니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 장례일)을 기해 일제의 수탈 정책과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로 학생들이 전개한 독립만세 운동으로 1919년 3·1운동, 1929년 11·3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일제의 억압적 통치에 맞선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6월 민주화운동으로도 불리는 ‘6·10민주항쟁’은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발발한 민주화 시위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1987년 1월 민주화운동 관련 수배자들 조사 중 물고문으로 숨지게 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고, 6월 9일에는 이한열 열사가 민주운동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6·10민주항쟁은 이 사건들로 6월 10일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며, 이 운동을 통해 6월 29일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올해는 남북 분단 79주년, 1950년에 발발한 6.25 한국전쟁 7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으로 불리는 6.25전쟁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입니다. 약 3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을 포함해 178,569명의 전사자와 555,022명의 부상자, 28,611명의 실종자와 14,158명의 포로가 발생했고, 민간인 사상자 100만여 명, 전쟁고아 10만여 명과 1천만 이산가족을 남겼으며,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입니다. 6·25전쟁은 저에게도 마음 아픈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두 살 때 발생한 6.25전쟁 중 아버님이 납북되신 다음 소식이 끊기어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 벌어진 교전인 연평해전(延坪海戰)은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으로 구분이 됩니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북한 해군 경비정이 서해 연평도 서쪽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을 침범하여 일어난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조선인민군) 해군 간의 교전입니다. 이 전투로 북한 해군의 경비정 1척 침몰, 5척 파손, 사상자 50(전사 20, 부상 30)여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같은 해 7월 3일 공식적으로 '연평해전'이라고 명명했지만, 2002년에 제2연평해전이 일어남에 따라 이 전투는 제1연평해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은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계속 남하하다가 갑자기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선제 기습포격을 가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25분간의 교전 끝에 우리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했고, 참수리 고속정은 예인 도중 침몰되었습니다. 교전 직후 국방부는 정전협정 위반으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을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북측의 응답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역사에 중요한 기념일들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은 조국의 자유와 안보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기리며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노력을 되새기는 마음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어려웠던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거나 순국선열들의 순결한 나라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한 명예와 예우를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호국보훈의 달’,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이 국민 모두의 마음에 간직되기를 기원하며, 보훈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함께 진정한 감사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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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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