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맹리 허정은 전적공파종중토지 맹리644번지 1,064㎡를 1982, 9, 22 허정명의로 지적복구한 후, 1993, 7, 7 소유자 복구한 사실이 확인되어 2018, 11, 11, 전적공(諱菖)시제를 봉행하고 정기총회시 허정 외 2인이 전적공파종중 소유토지를 개인소유로 넘겨간 사실을 보고하였던바 11일 후 동년 11, 22, 용인축협에 1억 2천만원 근저당설정을 하였다가 지난 5월 8일부터 5월 10일 사이 갯벌 흙으로 성토하여 전적공(諱菖)의 ⌜역사적 유적인 개구리봉⌟을 538년 만에 유적을 묻어버렸다. 알면서 한 행위라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
17世 휘창(諱菖1425~1486)은 자산공 추(樞)의 둘째 아들로 자는 요구(堯韭)로 1450년(세종32년) 25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469년 을축년 가을에 문과병과로 급제하였다. 1485년(성종 16) 전적(典籍)벼슬을 거쳐 이듬해인 1486년 황해도 신계 현령을 지내시고, 맹리에서 62세로 천수(天壽)를 다 하였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상여가 장지로 향해 운구 중 명전(銘旌)이 하늘 높이 솟구쳐 날아가 떨어진 곳을 지관이 허겁지겁 명전이 떨어진 곳을 달려가 주의를 살펴보니 그 자리가 범상치 않은 자리인지라 패철을 놓고 사방을 돌아보니 수정산을 주봉으로 하여 좌청룡 우백호에 마치 청황룡(靑黃龍)이 개구리를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에 지관은 이 곳을 명당으로 판단, 여기에 묘를 쓰면 크게 영달할 것이라고 하여 묘를 그곳에 정했다고 한다,
지관의 예언대로 자손들이 번성하여 5봉군 5문장(五封君 五文章)이 태아나 5봉군(五封君)은 20世 양천군(陽川君) 방(昉), 21世 陽平君 계(稧), 22世 양원군(陽原君) 선(選,) 23世 양은군(陽恩君) 흡(熻), 24世 양령군(陽寧君) 제(堤)이며, 5문장(五文章)은 20世 초당(草堂) 엽(曄), 21世 악록(岳麓) 성(筬), 21世 하곡(荷谷) 봉(篈), 21世 교산(蛟山) 균(筠), 21世 난설헌(蘭雪軒) 초희(楚姬)이다.
묘 앞 원삼면 맹리 644번지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밑에는 개구리 봉우리가 있었는데 갯벌 흙으로 덮어 유적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개구리봉이 있던 땅은 양천허씨전적공 유산으로 1980년 이전까지 농사를 지어 전적공(諱菖)을 비롯하여 조상님의 시제를 봉행해 왔으며 1960년경 일부 리기다소나무를 심은 토지에 원삼년 맹리 436번지 전적공토지에 무허가건물을 짓고 살고 있는 허정이 전적공파종중 총무를 볼 때쯤인 1982년 9월 22일 자기 이름으로 지적복구하고 1983년 7월7일 소유자복구를 한 사실을 2018년 11월 11일(음,10월 첫째일요일) 시제를 봉행하고 정기총회 시 종중토지를 개인소유로 넘겨간 토지에 대해 정기총회에 보고하였다.
이는 500여년을 후손들이 지켜온 선조(先祖)의 유적(遺跡)을 사리사욕(私慾)으로 묻어버린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요, 절치부심(切齒腐心)아닐 수 없다. 욕심을 비우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했다. 두고두고 지켜 볼 일이다. 이 땅은 1,064㎡로 2022년도 공시지가로118,423,200원이다.
시호(諡號)문숙공(文肅공) 호(號)는 초당(草堂)공의 12世손으로 초당공종회 회장 허세광
※ 봉군(封君):왕자.공신에게 군을 봉하던 제도. 문장가(文章家):글을 뛰어나게 잘 짓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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