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산책할 수 있는 행복2024.01.12“가라 옛날이여오라 새날이여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12월이 끝날 무렵에 외국에 사는 고교 동창생 친구가 보내온 카톡 연하장 제일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이해인의 ‘12월의 시’ 마지막 구절입니다. 사실 나는 그런 시가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요즘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상념이 많아진 탓인지 울림이 컸습니다.친구는 40년 전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단짝도 아니었고 외국에서 사니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이입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올 때 어울려 식사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말을 비롯해 가끔 그의 엽서나 카톡을 받아볼 때면 마치 묵은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 대로 들어버린 탓인 듯합니다.‘12월의 시’를 알게 해준 것도 좋았지만, 친구가 보낸 짤막한 사연이 애잔한 공감을 일으켰습니다.“시간은 옛날보다 많이 남아도는데 친구의 안부를 묻는 데 인색하게 살고 있어 부끄럽다. 나는 집사람 건강이 좋지 않아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요새 그나마 공원을 함께 산책할 정도가 되어 감사하며 살고 있다네. 공원의 숲길, 신선한 공기와 새소리도 내 귀에 들려오니 행복이 별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다. 새해에도 항상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며 새해 인사를 이해인 수녀의 ‘12월의 시’ 마지막 구절로 대신한다.”친구는 공원 산책길에서 찍었다면서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등걸에 앉아 구멍을 뚫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이라 초점도 안 맞고 흔들리는 이미지였지만 이 새가 “딱 딱” 소리를 내며 부리로 나무 속을 찍어내는 게 정말 경이로웠습니다.그의 사연 속에는 나이 70이 넘어 반려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숲의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를 들으며 공원 숲길을 산책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그에게 산책은 그저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크고 깊은 행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하반기 여러 번 입원하며 병치레했던 터라 ‘산책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을 느낀다.’는 친구의 감정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지하철 계단에서 낙상하여 휠체어 신세를 진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건강하게 거리를 활보했던 지인의 느닷없는 부음을 들으면 ‘삶이란 바로 걷는 것’이라는 걸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걷기는 인간에게 최고의 약”이라는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2500년 전 처방은 21세기 병원의 제자들에 의해 유효하게 집행되는 것을 봅니다. 수술받은 환자에게 의사들은 걸으라고 권합니다. 좁고 공기도 탁한 병원 복도에서 걷는 게 내키지 않는데도 걸으라고 닦달하는 것을 보면 걷기가 건강 회복에 임상적으로 효험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의사들은 걷기는 몸에도 좋을 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 걸어라, 그래도 나쁘면 또 걸어라.” 일이 안 풀려 마음이 답답하거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고민으로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울 때 걷기는 참 좋습니다. 좋은 해결책을 찾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걷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습니다.근래 걷기에 대한 화제가 주변에 풍부합니다. 제주올레길은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걸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고,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한두 차례 걸었던 사람들의 무용담을 주변에서 흔하게 듣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시고쿠 섬의 88개 사찰을 잇달아 걷는 시코쿠헨로((四國遍路)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은가 봅니다.이렇게 거창하게 걷는 것은 경제적 여유와 체력이 뒷받침해주어야 합니다. 시간도 많이 써야 합니다.여건이 되는 사람은 장거리 걷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공원이나 숲을 찾아 느릿느릿 걷는 산책을 생활화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자유칼럼 독자들도 산책할 수 있는 행복을 느끼며 사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매 걸음마다 보상이 뒤따른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걷기의 중요성을 더 이상 멋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필자소개김수종‘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개인정보가 포함되거나, 상업성 광고, 저속한 표현,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 반복적 게시물, 폭력성 글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 없이 수정·삭제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하여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하거나 배포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