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지극히 개인적인 새해 소망2024.01.05나에겐 대학에 입학해서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1966년에 입학했으므로 58년이나 된 인연입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그와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당대를 풍미했던 영국의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와 록밴드 비틀스의 노래를 특히 좋아했습니다.그와는 내가 제주도에 갈 일이 있거나, 그가 서울에 오면 연락해서 만나고, 궁금할 때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고, 가끔은 선물도 주고받던 평범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그와 나는 지난해 삶과 죽음,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보냈습니다.그 친구는 스스로 ‘걸어다니는 병원’이라고 말할 만큼 호흡기 소화기 관절 등에서 여러 지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7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병세는 자꾸 나빠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전화 목소리는 언제나 호쾌했고, 신호가 세 번 가기 전에 재빠르게 받았습니다.그러던 그가 지난봄부터 나의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은 70대의 클리프 리처드가 부르는 ‘더 영 원스(The Young Ones)’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는데, 평소 같았으면 즉각 응답했을 그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70 중반을 넘은 사람이 전화를 안 받으면 십중팔구는 건강이 원인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일이죠. 다만 전화기가 켜져 있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는 증표일 것 같아 대답 없는 전화지만 가끔 걸었었죠.6월 30일 혹시 문자는 받을까 해서 “잘 지내지? 카톡도 전화도 안 되네”라고 문자를 넣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전화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간병을 하고 있는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지 4개월째라고 했습니다.역시 예상대로 였습니다. 4개월째 의식불명이면 깨어나기도 어렵고, 깨어난다 해도 온전한 회복은 어렵겠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간병인으로부터 내가 보낸 클리프 리처드의 ‘더 영 원스’가 카톡으로 들어왔는지 확인한 뒤 그 노래를 친구의 머리맡에 나지막한 소리로 틀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있는 것이 청각이라니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가 친구의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적의 매개가 되기를 빌었지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난 7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친구가 “종건아”라고 제 이름을 부르면서 “나 살아있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은 친구가 살아온 것 같은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말은 어눌했지만 나와의 추억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기억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 후 또 두 달 정도 불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9월에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명의를 소개받아 치료를 잘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이라 면회는 안 된다 했습니다.10월 들어 “아직도 서울에 있나?”라고 문자를 넣었습니다. 친구 부인으로부터 뜻밖의 문자가 왔습니다. 친구가 제주도로 왔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에 감염되어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고, 회복이 힘들다고 한다는 의사의 말까지 전했습니다.지난 6월 간병인으로부터 4개월째 의식불명이라는 말을 듣던 때보다 더 절망적인 소식으로 들렸습니다. 오랜 병고에 시달린 환자에게 패혈증이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인가를 생각하니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이 사망선고처럼 들렸습니다.나는 친구의 핸드폰에 ‘더 영 원스’를 보낼 때의 심정으로 비틀스의 노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보냈습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노심초사했을 가족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빕니다”라고 답신을 보내고 나니 마치 조사(弔辭) 같았습니다.크리스마스 전날 이것이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비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패혈증을 이기고 회복 중이라고 했습니다.나는 그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맬 때 의사의 처방, 가족들의 간호와 함께 젊은 날의 추억을 되살려 준 음악의 도움도 있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친구가 새해의 힘찬 기운을 흠뻑 받아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필자소개임종건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 및 사장, 한국신문협회 이사를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후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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