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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허난설헌 공원에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본명은 허초희(許楚姬) 다른 이름은 허옥혜(許玉惠) 이다.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蘭雪軒) 또는 난설재(蘭雪齋) 이다. 당시의 사회에서 여인으로 본명과 자, 호를 갖춘 여성은 드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난설헌 허초희는 1563년 강원도 강릉시의 초당동에서 아버지 허엽과 어머니 강릉김씨 사이에서 삼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 이달(李達)에게 시와 학문을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고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난설헌은 그의 호인데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조선시대의 관례에 따라 그는 허난설헌, 허난설재, 난설헌 허씨라고 불렀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의 한사람으로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서예와 그림에도 능했다. 남편 김성립과 시댁과의 불화, 자녀를 잃은 슬픔 등 연이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인(死因) 미상. 27세의 나이로 맺힌 꽃봉오리를 마져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여인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사후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 알려진 웃지못할 사회에서 살았던 작가다. 우리 나라가 얼마나 열리지 못하고 닫혔던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개방된 나라에서 살았더라면 세계에서도 우뚝 설 여류작가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며 난설헌의 한 수의 시로 그 마음을 달래본다.
죽지사 · 3
난설헌 허초희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문 앞의 강물에 비단 옷을 빨았어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
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장정룡 역)
[출처 :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2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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