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려장 때문에, 하마터면 어머니를 잃어버릴 뻔 하였다.
토요일 아침, 서울로 떠날 지인을 아침 식사로 송별하고 나니, 마음이 울적하였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주고받은 노랫말 가사처럼, 왜 ‘가을엔 떠나지 마세요’라고 하는지가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한라산을 바라보니, 오늘 따라 설문대 할망께서 누워계신 자리가 사뭇 쓸쓸하다.
성공해서 떠난다 해도 이별이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닐 터인데...., 제주 바다를 터전 삼아 벌였던 사업을 접고서 가는 길이라...., 아침 내내 미안하였다. 애꿎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속이 많이 쓰라렸다. 아픈 건지, 슬픈 건지, 속상한 건지.... 가슴 한켠이 뚫려서 바람이 제멋대로 내 속을 휘적이는 탓이겠지.
몹시도 바람부는 가슴을 안고서 집으로 향하자, 문득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 잠깐 잊었던 나의 일상이, 드디어 내 중심을 차지한다. ‘별 일 없으시겠지..... 겨우 토요일 아침, 2시간을 비운 것 뿐인데.....’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집으로 와보니, 대문이 열려 있다. 이 시간에 누가 왔을 리도 없는데……. 싶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얼른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방문을 열어본다. 세상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 잠자리가 휑하게 하니 비어 있다. 무슨 일일까? 분명히 깊이 주무시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갔는데……. 살며시, 소리 소문 없이…….
그리고, 지금은 아침 9시니, 여전히 잠자리에 계실 시간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청려장을 찾아보니, 세상에, 그 녀석도 온데간데 없다. “어머니, 이제부터랑 이 청려장을 아들이랜 생각해영, 어디 갈 때랑 꼭 짚엉 갑서예! 이것만 짚으민 강생이가 좇아와도, 확 들럭 쫓아불민 돌아날 거난, 아무 걱정 어수다, 예!(강아지가 따라와도, 얼른 들어서 쫒아버리면 도망갈 테니, 아무 걱정 없어요).”라고 신신당부를 해놓았더니……., 그것을 짚고서 가신 게다. 하기야, 지팡이 없이는 몇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어려우신 형편이니, 청려장이 아니라도, 무엇인들 짚고서 나가셨을 터.
문제는, 그 청려장이 생기면서부터 어머니의 기력이 좋아지신 게다. 아니 엄격히 말해서, 당신 기분에 활력이 생겨서, 움직임이 많아지신 거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동선을 따라 집 주변을 동서로 훑으며 찾아보았다. 일전에 어머니를 잃어버려서 소방서가 출동했을 때, 그분들이 했던 방식을 따라서……. 집 가까운 곳의 풀숲, 구석, 덤불, 그늘 등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어머니가 혹시나 멀리 나가서 길을 잃어버렸을까 봐, 일주도로와 서귀포 매일시장까지 찾아다닌 우리들과 달리, 소방대원들은 어머니의 나이와 인상착의를 묻더니, 집 가까운 곳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얼마 없어서, 아마도 10분 만일 거다. 집에서 우리 걸음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머니를 찾아냈다. 길을 잃어버려서 막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이처럼 떨고 있는 노인을. 그래서 깨달았다. 우리에겐 어머니이지만, 그들에겐 인지능력이 떨어진 치매노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하는 수 없이 112에 신고를 하자, 얼마 없어 두 사람의 경찰관이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의 인상착의를 묻는 그들은, 적어도 40대의 중견 경찰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의 부주의로 이 막중한 업무의 국가 공무원을, 길 잃어버린 노인을 찾는 일로 불러들이다니……. 연신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이는 내게, 그들은 믿음직한 얼굴로 ‘우리가 할 일!’이라며 오히려 위로를 한다. 서로가 흩어져서 ‘어서 찾아내자’고 하는데, 핸드폰 벨이 세차게 울렸다. 언니의 전화다. 어머니를 찾았단다. 청려장 때문에 기력이 좋아지신 어머니가, 혹시나 버스 타러 가는 데로 가셨나 싶어서 골목길을 뒤지다 보니, 그 길가에 앉아 계신단다.
세상에! 어머니는 마치 고아처럼 길가의 구석진 곳에 기대어 검은 비닐봉지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누가 지나가다가 밀감을 주었단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딴 듯한 노란 귤들이 대여섯개 포개어져 있다. 어쩌며 지나가던 분이 걱정이 돼서 그것이라도 요기하시라 드리고 갔나 보다. “어멍을 잃어부러시카부댄, 우리가 얼마나 조들아신디...., 게무로사, 이 미깡 몇 개 따문에 이디꼬지 이추룩 둥그러와수과?(어머니를 잃어버렸을까 봐, 우리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겨우 이 밀감 몇 개 때문에 여기까지 이렇게 헤매면서 오셨어요)”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머니를 찾기만 하면 얼른 부둥켜 안으리라 싶던 마음은, 그 사이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머니는 어디서 찾아 입으셨는지 모를 빛 바랜 겨울 잠바에, 누비바지 차림이었다. 아마도 아침 바람이 차니까, 당신이 여기저기 뒤져서 단단히 입으셨는가 보다. 하지만 누가 보면 영락없이 집 없이 떠도는 노숙인이었다. 울컥 하니 치미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어머니를 다그치고 있었다. 마치 밀감포대처럼 자동차 뒷좌석에 태워진 어머니는, ‘밀감을 조금밖에 얻지 못해서 자신을 구박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어머니가 한 살 아기라 여기면서도, 이럴 때는 왜 어른이기를 바라게 되는지.... 다행스러움을 무색케 하며 쏟아지는 어머니를 향한 잔소리와 연민, 자신에 대한 속상함과 비난을 싣고서 집으로 도착한 순간, 얼룩진 차창 너머로 섶섬이 가만히 우리를 응시한다. 이 모든 사건의 내막을 처음부터 지켜보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이쯤에서 너희를 이곳으로 안전하게 데려 왔노라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기다리고 있노라고..... 마치 연극의 2막 3장처럼. “어머니, 이제부터랑 기분이 좋으나 궂으나 이디(여기)를 떠나지 맙서예! 섶섬이 보이는 이디, 어머니가 앉으시랜 의자를 갖다 놔시난, 기분이 좋으나 궂으나, 이디 왕 앉읍서, 예!”
오늘은, 어머니가 보말을 까시며 기분이 좋으시다. 평생을 해녀로 사셨던 어머니에게, 보말은 참으로 반가운 친구이자 친숙한 일거리다. 젊어서는 대포 바다를 주름잡던 상군해녀였으니, 보목 마을의 섶섬 앞에서 보내는 노년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 없다.
참, 이 자리를 빌려서 고백하자면, 보말에 대해선 보목마을 해녀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해녀가 아닌 사람은 보말을 잡는 게 법으로 금지된 일이다. 그 엄중한 사항을 엄격하게 고지하는 경고판이, 바닷가의 잘 보이는 곳에 단단히 세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이 바다인 어머니에게, 보말잡기 금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래서 물 때를 보아 적당한 시간에 한 바가지 정도 어렵사리 보말을 잡아다 드린다. 어머니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해녀님들에겐 참으로 송구스런 일이다.
“오늘은 낭썹 호나 꼬딱 안 허는 날이여!(나뭇 잎사귀 하나 까딱 안 하는 날이야).”라고 하시는 걸 보니, 오늘도 어머니는 기분이 아주 좋으시다. “정옥아, 우리 집은 잘도 부재여, 이! 마당에 저추룩 노물(배추)도 하고(많고), 놈삐(무)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잔디를 파내고서, 그 자리에 대신 심은 배추와 무들이 제법 자라서 김장철을 기다리고 있다.
70평 터에다 집·쇠막·창고·도통을 두고 살았던 어머니에게, 이 집은 그야말로 마당이 드넓은 집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그렇게 바라시던 남향이 아닌가. “니네 아방이 이 집을 봐시민, 막 잘 샀댄 헐꺼여. 집은 이추룩 남향으로 들어 앉아사, 여름엔 시원허곡, 겨울엔 또똣허느네...!”. “맞수다게! 이디서 어머니영 곹이 오래오래 살랜, 아버지가 이디 살라 허멍 고리쳐줘수게. 경 허난 이게 다 어머니 덕분이우다!”라고 말하고 보니, 정말 그렇다. 아버지가 저 하늘에서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슨 수로 이 시원한 섶섬 앞의 남향집을 찾을 수가 있으랴. 어머니가 백 세를 넘기면서 오래 오래 사시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하늘에서 아버지가 어서올라 부르실때까지, 부디 우리 어머니 이곳에서 아프지 말고, 다시는 길 잃어버리지도 말고, 오래오래 안전하고 행복하시기를....
부디, 이 가을의 귤림추색(橘林秋色: 귤 익어가는 가을 빛)을 행복하게 보내시고, 겨울의 녹담만설(鹿潭晚雪): 백록담의 늦겨울 눈)도 바라보실 수 있으시기를,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더 기도해 본다. 오늘은 참.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