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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시인묵객-3 [북경노인 이진회], 2023. 9. 28.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시인묵객-3
,북경노인 이진희추천 0조회 2023.09.28 15:07댓글 0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허초희(許楚姬,1563,명종18∼1589,선조22)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자는 경번(景樊)이고 호는 난설헌(蘭雪軒)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허엽(曄)의 딸이다. 

어릴 때 오빠(筬, 篈)와 동생(筠)의 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워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었다. 

허봉과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은 기생과 풍류에 빠졌고,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사랑하던 남매를 잃고 유산까지 했다. 

오빠 허봉의 귀양과 죽음 등, 친정의 불행이 겹쳐 삶의 의욕을 잃고 

고뇌하다가 27살로 죽었다. 

<난설헌집>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아들을 곡하며 (哭子)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서로 마주 보고 있구나.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고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밝네.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 무덤에 술잔을 붓네.

  

너희들 남매의 혼은 응당 서로 알아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

  

황대의 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네.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紙錢招汝魄 玄酒奠汝丘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 縱有腹中孩 安可冀長成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 (蘭雪軒詩集)

  

 

  

 

  

이 시는 아들을 잃고 무덤에서 곡하며 지은 오언고시로 

지(紙), 우(尤), 경(庚)운을 썼다. 

아들과 딸을 잃고 애끊는 슬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첫 줄은 해마다 연이어 두 아이를 잃은 참혹한 운명을 서술한 것이다. 

담담하게 사실을 늘어놓았다. 둘째와 셋째 줄은 두 무덤의 광경이다. 

두 아이가 나란히 묻혀 있는 광릉(경기도 광주) 땅 무덤 주변에는 

백양나무에 바람이 불고 밤이면 도깨비불이 반짝이는 슬픈 곳이라고 하였다. 

넷째와 다섯째 줄은 아들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다. 

지전을 태우면서 혼을 부르고 술잔을 무덤에 붓는다. 

그리고 남매의 혼령은 서로 알아보고 어울려 놀 것을 기원한다. 

어두운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정답게 어울려 노는 

동심의 세계에 머물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 두 줄은 참혹한 현실이다. 

복중에 아기가 있지만 자라기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하여 자신의 삶이 평온치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연달아 아이들을 잃는 슬픔을 <황대과사(黃臺瓜辭)>에 비겨 

노래하다가 슬픔이 북받혀 목이 메인다고 하였다. 

<황대과사>는 당나라 장회태자(章懷太子)였던 이현(李賢)이 지은 노래로 

어머니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형을 독살시키고 자신을 태자로 삼자 

형제들이 죽어가는 것을 오이넝쿨의 오이가 줄어드는 것에 빗대어 노래했다.

  

 

  

 

  

봄날 느낀바 있어 (春日有懷)

  

 

  

 

  

한양이 아스라하여 사람의 애를 끊는데 잉어가 한강 가에서 편지를 전해왔네.

  

새벽에 우는 꾀꼬리를 빗속에 걱정하고 맑은 봄날 한들거리는 푸른 버들 바라보네.

  

섬돌에는 드넓게 푸른 풀이 돋아나고 거문고는 처량하고 조용히 먼지 쌓이네.

  

누가 목란주 위의 나그네를 생각하랴, 광나루에는 마름꽃만 가득 피어 있구나.

  

 

  

 

  

章臺迢遞斷腸人 雙鯉傳書漢水濱 黃鳥曉啼愁裏雨 綠楊晴裊望中春 瑤階羃歷生靑草 寶瑟凄涼閑素塵 誰念木蘭舟上客 白蘋花滿廣陵津 (蘭雪軒詩集)

  

 

  

 

  

이 시는 그녀의 가정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칠언율시로 진(眞)운이다. 

그녀의 시댁은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경수마을이었고, 

남편 김성립(金誠立,1562∼1592)은 15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관 정자(正字), 저작(著作) 벼슬을 지냈는데, 이때 한양에 머물러 있었다. 

이 시는 무심한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수련은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광주에서 한강 건너 서쪽을 바라보며 소식오기를 기다리는데 

잉어가 소식을 전해왔다고 하였다. 

잉어가 편지를 전한다는 말은 중국에서 흔히 쓰이는 관용어다. 

함련은 혼자 지내는 나날의 쓸쓸함이다. 

쌍쌍이 나는 꾀꼬리가 새벽부터 울지만 자신은 빗속에서 

그들을 걱정하고 맑은 봄날 남편을 생각하며 한들거리는 

버들을 바라본다고 하였다.

시각과 청각의 대조로 대구를 이루었다. 

경련도 고적한 주변이다.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섬돌에는 푸른 풀이 돋고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거문고에는 먼지만 쌓여있다고 하여

 부인네의 외로움이 투영되어 있다. 

미련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다. 

남편은 기생과 더불어 목란으로 만든 배를 타고 뱃놀이에 빠져 있을 것인데, 

자신은 광나루에서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다가 마름꽃만 쳐다보면서 

누가 그 사람을 생각하겠느냐고 반어를 내뱉고 있다.

  

 

  

 

  

하곡 오라버니가 갑산으로 귀양가는 것을 보내며 (送荷谷謫甲山)

  

 

  

 

  

멀리 갑산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는 함경도 땅이라 행색이 바쁘네.

  

신하는 태부 가의와 같지만 임금이 어찌 초회왕이겠는가?

  

강물은 가을 언덕에 잔잔하고 변방의 구름은 석양이 되려 하겠지.

  

서리 바람이 기러기 날아가는 데 불어 안항이 끊기면 행렬을 이루지 못한다네.

  

 

  

  

  

遠謫甲山客 咸原行色忙 臣同賈太傅 主豈楚懷王 河水平秋岸 關雲欲夕陽 霜風吹雁去 中斷不成行 (蘭雪軒詩集)

  

 

  

 

  

이 시는 1583년 둘째 오빠 허봉이 갑산으로 귀양갈 때 지은 오언율시로 

양(陽)운과 경(庚)운을 통운했다. 

동복(同腹) 오빠가 귀양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다. 

수련은 귀양가는 오빠의 행색이다. 

함경도 변방으로 멀리 귀양을 떠나는 오빠의 모습은 초라하고 

또 바쁘다고 하였다. 

그러한 행색을 보는 누이의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함축되어 있다.

 함련은 오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조정에 대한 원망이다. 

허봉은 병조판서 이이(李珥)가 자의로 일을 처리한 것을 비판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한나라 문제 때 가의(賈誼)가 제도 개선책을 냈다가 공신들의 시기를 받아

 장사왕(長沙王)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던 고사를 들어 

오빠가 억울하게 귀양가게 되었음을 말하였다.

 초회왕은 술자리에서 총애하는 궁녀를 희롱한 장수의 실수를 용서하여 

뒤에 그 장수가 큰 공을 세우게 했다는 초장왕의 절영지회(絶纓之會)의 

고사를 이용한 듯한데, 그렇다면 초회왕을 초장왕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선조 임금이 젊은 신하의 혈기를 아량으로 품지 못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련은 귀양가는 오라비에 대한 염려다. 

가을 언덕에 강물이 잔잔하기를 바라고 변방 구름은 석양을 받아 

저물어 갈 것이니, 귀양살이가 염려된다는 말이다. 

미련은 탈없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그들의 형제자매가 기러기가 나는 것처럼 나란히 행렬을 지어 날아야 할 텐데

 오라비가 귀양지에서 잘못 되면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신선을 바라는 노래 (望仙謠)

  

 

  

 

  

고운 꽃 산들바람 파랑새 날자 서왕모의 기린 수레는 봉래섬으로 향하네.

  

난초 깃발 꽃 배자에 흰 봉황 타고 웃으며 붉은 난간에 기대어 예쁜 풀을 따네.

  

바람 불어 무지개빛 치마를 날리자 옥팔찌 구슬 장식 소리 쟁그랑거리네.

  

소아는 쌍쌍이 구슬비파 뜯고 꽃 핀 계수나무는 봄 구름 사이로 향기롭네.

  

새벽에야 부용각 잔치가 끝나니 푸른 바다에 푸른 동자들이 백학을 타고 가네.

  

자줏빛 퉁소소리 오색노을에 퍼지니 이슬 젖은 은하수는 새벽 별 사이로 떨어지네.

  

 

  

 

  

瓊花風軟飛靑鳥 王母獜車向蓬島 蘭旌蘂帔白鳳駕 笑倚紅欄拾瑤草 天風吹擘翠霓裳 玉環瓊佩聲丁當 素娥兩兩鼓瑤瑟 三花珠樹春雲香 平明宴罷芙蓉閣 碧海靑童乘白鶴 紫簫吹徹彩霞飛 露濕銀河曉星落 (國朝詩刪 許門世藁)

  

 

  

 

  

이 시는 신선세계를 상상하여 지은 칠언고시로 

호(皓), 양(陽), 약(藥)운을 썼다. 

<난설헌시집>에는 첫째 연의 “린(獜)”이 “린(麟)”으로, 

둘째 연의 “란(欄)”이 “란(闌)”으로 되었다. 

그녀는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하여 상상세계를 즐겨 시화하였고 

특히 신선시는 그녀가 남긴 시의 과반을 차지한다. 

그만큼 그녀가 신선에 관심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데 

이는 즐겨 읽었다는 <태평광기(太平廣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권필은 <국조시산>에서 이 시를 “이하(李賀) 이후에 겨우 두 편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長吉之後 僅得二篇)”라고 평했다. 

이하는 자가 장길(長吉)이고, 초현실적 소재를 기이한 시어로 표현한 

당나라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서왕모가 신선들의 부용각 잔치에 참석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첫 줄은 서왕모의 행선지다. 

서왕모가 기린이 끄는 수레를 타고 봉래섬으로 향한다고 하였다. 

둘째 줄과 셋째 줄은 서왕모의 행동과 치장이다. 

서왕모는 봉황을 타기도 하고 기화요초를 따기도 한다. 

꽃 배자에 무지개빛 치마, 옥팔찌에 구슬 장식 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넷째와 다섯째 줄은 부용각 잔치다. 

신선들이 모여 월궁의 선녀인 소아는 비파를 연주하고 

계수나무는 향기를 날리며, 잔치가 끝나자

 청의동자들은 백학을 타고 돌아간다. 

마지막 줄은 신선들의 사라짐이다. 

퉁소소리가 새벽노을에 퍼지니 신선세계는 사라지고 만다.

  

 

  

 

  

강남의 노래 (江南樂)

  

 

  

 

  

사람들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지만 저는 강남의 슬픔을 본답니다.

  

해마다 나루터에서 애끊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배를 바라보지요.

  

 

  

 

  

호수가 마을에 달빛 비추는데 연밥 따느라 밤중에야 돌아가지요.

  

가벼운 노 물가 가까이 대지 마세요, 원앙이 놀라 날아갈까 두렵답니다.

  

 

  

 

  

강남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서 어려서는 이별일랑 몰랐답니다.

  

어찌 알았겠어요, 나이 열다섯에 어부에게 시집오게 될 줄이야.

  

 

  

 

  

人言江南樂 我見江南愁 年年沙浦口 腸斷望歸舟 // 湖里月初明 采蓮中夜歸 輕橈莫近岸 恐驚鴛鴦飛 // 生長江南村 少年無別離 那知年十五 嫁與弄潮兒(國朝詩刪 許門世藁)

  

 

  

 

  

이 시는 당시(唐詩) 악부를 본받아 장강(長江) 남쪽의 여인들의 

민요를 상상하며 지은 오언절구로 우(尤), 미(微), 지(支)운을 각각 썼다. 

모두 다섯 수인데 둘째 셋째 넷째 수가 <국조시산>에 선발되었다. 

강남의 여인이 남편과 이별하고 연밥을 따느라 노동에 시달리며 

멀리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정을 상상하여 자신의 고통을 투사한 것이다.

 첫 수는 강남 여인의 슬픔이다. 

남편이 떠나는 나루터에서 강남 여인의 슬픔을 본다고 하였다. 

둘째 수는 강남 여인의 생활이다. 

밤이 되도록 연밥을 따느라 노동에 종사하지만 

짝지어 노는 원앙을 훼방하지 말라고 하여 부부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셋째 수는 신세 한탄이다. 

어려서는 이별을 모르다가 열다섯에 어부에게 시집와서

 어부가 고기잡이로 집을 떠나니 혼자 있는 날이 많다고 하여

 남편을 그리워하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이는 난설헌의 심중의 말이기도 하다.

  

 

  

 

  

궁중의 노래 (宮詞)

  

 

  

 

  

가을 대궐의 맑은 집이라 초저녁이 긴데 궁인이 임금 가까이 모시지 못하게 하네.

  

때때로 가위 잡고 비단을 마름질하여 등불 앞에서 한가로이 원앙새를 수놓는다.

  

 

  

 

  

새로 간택된 궁인이 임금님 모시니 비단 병풍 사이에 합환의 향기 내리셨네.

  

내일 아침 아감이 와서 물으면 웃으면서 가슴 앞의 작은 주머니를 가리키리라.

  

 

  

 

  

淸齋秋殿夜初長 不放宮人近御床 時把剪刀裁越錦 燭前閑繡紫鴛鴦 // 新擇宮人直御床 錦屛初賜合歡香 明朝阿監來相問 笑指胸前小佩囊 (國朝詩刪 許門世藁)

  

 

  

  

  

이 시는 당시(唐詩)를 본받아 궁녀의 생활상을 읊은 칠언절구로 양(陽)운이다.

 모두 20수인데 여덟째와 열일곱째 수가 <국조시산>에 선발되었다. 

궁녀의 생활을 상상하여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궁녀가 바느질하는 모습과

 임금의 승은을 입은 궁녀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첫 수의 첫 줄은 가을밤에 임금을 모시지 못하는 궁녀의 모습이다. 

맑은 가을밤 잠이 오지 않아 초저녁이 긴데 

궁 안의 유일한 남자인 임금을 모시지 못하는

 궁녀의 심정은 답답하고 외롭다. 둘째 줄은 궁녀의 답답하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바느질이다. 

항주 비단을 마름질하여 원앙새를 수놓는다고 하였다. 

원앙새처럼 부부가 화락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난설헌도 자신의 심정을 궁녀에게 투사했을 것이다. 

둘째 수의 첫 줄은 간택된 궁녀가 임금과 합환하는 장면이다. 

비단 병풍을 둘러친 속에서 간택된 궁녀가 임금을 모시며 

즐거움을 나누고 합환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마지막 줄은 승은을 입은 궁녀의 행동이다. 

다음날 아침에 내시가 물으면 임금이 내린 합환향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가슴에 차고, 자랑스럽게 그것을 가리키겠다고 했다.

  

 

  

변방 요새에 드는 노래 (入塞曲)

  

 

  

 

  

해가 지자 사막너머 봉화불이 건너오니 요새 문에 나팔 불어 탐정깃발 펄럭이네.

  

사막 북쪽 오랑캐들 쳐부쉈다 전해오니 백마 탄 장군이 요새로 돌아오리.

  

 

  

 

  

붉은 활 흰 화살에 검은 갖옷을 입고 파란 눈의 보라매를 비단토시에 앉혔네.

  

허리에 찬 황금 인장은 말[斗] 만한데 장군은 이제 북평후에 제수되었네.

  

 

  

 

  

落日狼煙度磧來 塞門吹角探旗開 傳聲漠北單于破 白馬將軍入塞回 // 騂弓白羽黑貂裘 綠眼胡鷹踏錦鞲 腰下黃金印如斗 將軍初拜北平侯 (國朝詩刪 許門世藁)

  

 

  

 

  

이 시는 변방 요새의 전쟁을 상상해 본 칠언절구로 회(灰), 우(尤)운을 썼다. 

두 다섯 수인데 셋째, 넷째 수가 <국조시산>에 선발되었다. 

당시(唐詩)의 변새시는 씩씩한 남성의 기상을 드러내었는데, 

난설헌도 이를 본받아 변새시를 다수 지었다. 

첫 수의 첫 줄은 전쟁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해가 지고 사막 너머에서 오랑캐가 침입했다는 봉화불이 올라오자 

요새에 비상 나팔소리가 울리고 적정을 살피러 나갔던 

탐마의 깃발도 펄럭인다. 

둘째 줄은 전쟁이 끝난 상황이다. 

사막 북쪽 오랑캐를 쳐부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곧 전승한 장군이 백마를 타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 수의 첫 줄은 돌아온 개선장군의 위용이다. 

검은 갖옷에 활과 화살을 메고 비단 토시를 낀 팔뚝에 보라매를 앉혔다. 

마지막 줄은 장군에게 내리는 상이다. 

개선하고 돌아온 장군에게 조정에서는 북평후를 봉하였고 

벼슬을 상징하는 황금인장은 말[斗] 만하다고 하였다. 

전쟁에 나가 전공을 세운 남성의 호쾌한 기상을 재현하였다. 

이렇게 난설헌은 다양한 제재로 당시(唐詩)풍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출처] 옥봉 이씨, 허초희의 한시

[출처]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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