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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병동의 풍경들[김수종], 2023. 7. 27.

   
외과 병동의 풍경들
김수종2023년 07월 27일 (목) 00:00:40

근래 병치레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올여름엔 두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보름 남짓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6월 중순 어느 일요일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타이레놀 한 알 먹고 참으면 넘어가는 게 평소 대응 방법이었는데, 그날 증세엔 그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엉망이었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액스레이 등 각종 검사를 통해 두 가지 진단결과가 나왔습니다. 담석증으로 쓸개가 망가졌으니 우선 담낭 절제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와 더불어 콩팥과 방광 사이를 연결하는 요관에 큰 결석이 생겼으니 이것도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응급실로 처음 들어갈 때는 링거 맞고 좀 쉬면 그냥 걸어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소화기 외과 병동의 수술 대기 환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내 팔 혈관엔 수액과 필요한 약제가 투입되는 주사기가 꽂혔고, 내 배와 옆구리엔 구멍이 뚫려 담낭의 담즙을 몸밖으로 배출해주는 호스와 주머니가, 그리고 한쪽 콩팥에서 생기는 소변을 직접 외부로 뽑아내는 호스와 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간병인이 없으면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과 병동은 거대한 병원의 진료시스템과 사회 현상이 압축된 곳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입원한 6인실은 열흘간 열댓 명의 환자가 바뀌었습니다. 50대로 보이는 환자가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환자들이었습니다. 간을 절제했거나, 위를 도려내는 등 암 수술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힘든 이들에겐 간병인이 딸려있었습니다. 
간병인은 거의 중국 조선족 여성들이었습니다. 환자의 대소변과 가래를 받아내고 산책을 도와주는 등 24시간 환자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언론에 간병인 구인난 문제가 대두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곳 병실에서 보니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며칠간 조선족 여성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를 담당한 간병인은 연변 출신으로 1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왔고 남편은 얼마 전 사고로 죽어서 혼자 산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환자로부터 하루 받는 간병비는 식비포함 13만원이며 인력회사에 월 13만원을 내면 총액이 얼마가 되든 나머지는 자신의 몫이 된다고 합니다. 
그녀의 꿈은 칭타오에 사는 두 딸에게 아파트를 사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한국의 어머니나 조선족 어머니나 다른 게 없는 듯합니다. 
조선족 간병인들은 큰 가방을 끌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병실로 이동합니다. 환자를 맡은 이상 24시간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간병인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듯합니다. 그들에게 즐거운 시간은 병실마다 있는 조선족 간병인끼리 딸자랑 아들자랑 잡담하는 게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60년 전 서독에 파견됐던 한국 간호사들이 했던 일이 이들 조선족 간병인들이 지금 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원실 풍경이 21세기 들어, 특히 팬데믹 이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식구도 코로나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병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 입원하면 식구들이 병실에 모여들고 냉장고에 먹을 것을 쌓아놓고 문병 오는 친지들에게 음료수라도 대접하던 시절은 이제 영영 오지 않을 듯합니다. 
스마트폰이 외과병동 환자들에겐 가족이나 직장과 대화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가족과는 휴대폰을 통해 대화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현대사회의 단절된 인간관계의 단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술 받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도 요관 결석을 부수는 수술도 모두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며 병원은 사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의료 기술이 발달됐다고 하지만 환자는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입니다. 
나는 전신마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20년 전 팔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어느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에서 여러 시간 깨어나지 못해 수술실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전공의가 슬쩍 말해주는 전후 사정을 듣고 "내가 병실이 아니라 지하실로 갈 수도 있었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말하면서 전신마취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찾아와서 "20년 전과 비교하면 마취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켜줬습니다. 
마취하고 수술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건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수술실 간호사의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보호자 대기실로 향하는 문을 잠시 열어주며 "저기 문밖에 보호자분과 인사하고 들어가시죠."라고 말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수술은 생사의 갈림길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나는 마취에서 깨어났고 '쓸개없는 남자'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대학병원처럼 첨단 시스템과 인력을 갖춘 조직은 없을 것입니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환자의 몸과 마음을 읽는 의사의 모습은 고전이자 낭만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의사와는 아침 회진시간에 1,2분 만나 몇마디 물어보는 게 전부인 듯합니다. 물론 전공의가 수시로 체크하기는 하지만 환자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모두 액스레이, CT, MRI, 초음파,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 데이터로 처리되어 의료진의 판단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수술환자로 누워있으면 새벽 4시부터 검사가 시작됩니다. 간호사의 혈압체크,  체온측정, 채혈이 끝나면 영상촬영실로 옮겨져 엑스레이를 매일 찍습니다. 아픈 부위가 많고 수술과 약물투여 후의 변화를 알려면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과연 모두가  꼭 필요한 검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4시간 꽂혀 있는 주사기를 통해 영양제, 항생제, 진통제 등 각종 주사제가 투입됩니다. 수술을 앞두거나 끝나서는 수혈도 해야 했습니다. 병원이 권하는 투약이나 검사를 회피할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게 되어 병원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치료받고 회복되는 일만 생각했는데 퇴원을 앞두고 막상 병원비 내역을 받아드니 놀라웠습니다. 이제 국민연금이 주소득원인데 그 국민연금액의 60%에 해당하는 환자부담 병원비, 환자부담금의 2배가 넘는 공단 부담금, 두 가지를 합친 병원비 총액을 보며 미묘한 감정이 충돌했습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가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말, 재미교포도 짐싸들고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귀국한다는 이야기, 우리나라 병원들이 건강보험에 빨대를 꽂고 살아간다는 소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그동안 낸 건강보험 총액을 생각하면 더 고가의 병원치료를 많이 받아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나이가 들어 병원 치료 빈도가 높아지면 나의 건강보험기여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인데, 그 후엔 누가 낸 돈으로 내가 치료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요. 30% 정도인 환자 부담금이 무서워 병원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퇴원하는 날 친구 한 명이 뒤늦게 입원소식을 듣고 카톡문자로 문병인사를 보내왔습니다. 나의 치료과정 설명 문자를 본 그 친구가 곧 응답 문자를 이렇게 보내왔습니다. 
"고생했구나. 그래도 많이 나쁜 병이 아니니까 다행이다. 나는 6개월 전에 신장암 진단을 받아서 한쪽 콩팥을 제거해서 살고 있다. 오래 사는 댓가로 한쪽 콩팥을 세금으로 냈다고 생각하며 산다."  
나이 먹어 병을 바라보는 그의 말이 공감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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