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가 한글로 기록한 유일한 시
시진핑도 읊었는데 당신은 모른다
정유재란 때 우정 비유한 허균 시
코로나19 중국 후원품에도 적혀
강원도, 조선시선 번역·소개해야

▲ 중국 선전시에서 보낸 마스크 2만 장이 허균의 시와 함께 도착했다.
▲ 중국 선전시에서 보낸 마스크 2만 장이 허균의 시와 함께 도착했다.

2014년 한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방한 이틀째인 7월 4일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친선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허균의 시를 인용했다. “한국의 고대시인 허균의 시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속마음을 언제나 서로 비추고(肝膽每相照), 얼음같이 깨끗한 마음을 차가운 달이 비추네(氷壺映寒月)’” 간과 쓸개는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고, 달빛이 비추는 얼음 항아리는 감출 것 없이 투명하니, 참다운 우정을 비유한 말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 시가 바로 양국 국민의 우정을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시는 허균이 정유재란 때 명나라 지원군의 일원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던 오명제(吳明濟)에게 보낸 ‘송별시’이다. 허균의 시 ‘참군 오자어(오명제의 자) 대형이 중국 조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吳參軍子魚大兄還天朝)’를 더 보자. “나라는 중외의 구별 있다지만(國有中外殊) 사람은 구별이 없는 법이네(人無夷夏別). 태어난 곳 달라도 모두 형제니(落地皆弟兄) 초 땅, 월 땅을 나눌 필요가 어찌 있으리(何必分楚越). 간담을 언제나 서로 밝게 비추고(肝膽每相照) 빙호를 찬 달이 내려 비추네(氷壺映寒月).”

▲ 허균이 조선 고유의 글자를 자랑하기 위해, 오명제를 환송하는 시에 한글 음을 달아 주었다. ‘송오참군ㅈㆍ어대형환텬됴(送吳參軍子魚大兄還天朝)’라는 제목의 이 시는 명나라 시대의 대표시를 선집한 ‘명시종’이나 ‘열조시집’에도 그대로 실려, 외국문자를 기록한 유일한 시가 되었다.
▲ 허균이 조선 고유의 글자를 자랑하기 위해, 오명제를 환송하는 시에 한글 음을 달아 주었다. ‘송오참군ㅈㆍ어대형환텬됴(送吳參軍子魚大兄還天朝)’라는 제목의 이 시는 명나라 시대의 대표시를 선집한 ‘명시종’이나 ‘열조시집’에도 그대로 실려, 외국문자를 기록한 유일한 시가 되었다.

오명제는 전쟁터가 아닌 병조좌랑(정6품) 허균의 집을 숙소로 정했다. 허균의 형 허성도 정유재란(1597) 중에 명나라 장수들을 상대하는 병조참지(정3품) 경리도감에 임명되어 형제가 함께 왜란에 참전하고 있었는데, 오명제가 허균의 집을 숙소로 청한 이유는 군사작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력과 비평 안목이 뛰어난 그의 힘으로 ‘조선시선’을 편집하기 위해서였다. 허균은 이때 ‘난설헌집’ 초고 200수도 전해주어, ‘조선시선’에 실린 112명 340수 가운데 난설헌의 시가 58수로 가장 많이 실렸다. 오명제가 1598년 잠시 귀국할 때에 조선의 시를 가지고 가자 장안의 문인들이 난설헌의 시를 즐겨 외웠기에 가장 많이 뽑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던 몇년 동안, 한국 도시와 결연한 외국 도시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중국 선전시에서 부산시로 보낸 의료용 마스크 2만 장이 2020년 4월 3일 도착했는데, 포장지에 허균의 이 시가 적혀 있었다. 길림성 돈화시에서 서울시 송파구에 보낸 의료품 상자에는 허균의 시가 원문과 함께 한글 번역문까지 실려 두 나라 국민의 우정을 강조했다. 코로나와 함께 400년만에 소환된 ‘조선시선’에는 허균이 강릉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한 시가 실려 있다. 오명제가 남쪽 고향 회계(會稽)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시로 읊자 허균이 그 시에 차운하여 ‘차오자어선생남장귀흥(次吳子魚先生南庄歸興)’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제2수 첫 구에 “소나무 사립문 대나무 오솔길에 맑은 연기가 둘렸으니, 우리 집은 제2동천 명주에 있다오(松關竹徑帶晴烟, 家住溟州第二天.)”라고 했다. 오명제는 중국 독자들이 이 구절의 뜻을 제대로 모를까봐 “허균의 집은 강릉이다. 강릉은 옛날의 명주인데, 오대산 아래에 있다. 삼한에 12동천(洞天)이 있는데, 강릉이 제2동천”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동천은 신선세계같이 아름다운 곳이니, 전쟁 중에도 고향을 잊지 못해 중국에 자랑하는 허균의 강릉 사랑이 돋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외우고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기억하는 허균의 시를 우리만 아직 모르고 있으니, 강원도에서 ‘조선시선’을 번역하여 여러나라에 소개하기를 기대한다.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