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미국에서 막내 아들이 다녀가더니, 이번 주에는 큰 손녀 성미가 찾아왔다. 2남7녀 중 장녀의 첫째 딸, 어머니에게는 첫 번째 손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딸의 장녀다. 어머니는 첫 아이를 홍역으로 잃어버렸다. 오랫적 기억은 더 오래 남는 법. 어머니는 그 아기가 얼마나 열에 들떠서 바알개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다 눈을 감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불쌍헌 거, 얼마 살아보지 못해연 죽어부렀져..... 호근 살아나 보젠 말룩말룩 날 뵈리멍(아무튼 살아나 보려고 말똥말똥 나를 보면서), 살려 도랜 살구정 해연 가웃가웃 손을 흔들어신디(살려 달라고, 살고 싶어서 가만가만 손을 흔들었는데), 오꼬시 열 버천 온 몸에 와랑와랑 불이 붙언, 애삭허게 죽어부러라(그만 열을 이기지 못해서 온 몸에 활활 불이 붙어서, 애석하게 죽어버렸어). 요새 곹으민 약도 있고 병원도 이시난, 그만썩헌 열이사... 얼마던지 살아나실 건디.... 나한티 그 아기 말은 거느리지 말라.”
어느새 어머니의 두 눈에 물기가 촉촉히 배어들었다. 괜한 말로 어머니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고 말았다. 8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여전히 애석하고 한없이 미안스런 어머니의 저 깊은 가슴 속 기억이여!
1940년대 제주도는 망망대해의 외딴 섬, 의료혜택이 닿지 않는 마지막 오지였다. 죽을 만큼 아플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늘을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정성과 기대뿐. 바다에서 물질로 살아가는 해녀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을 바다의 영등할망에게 빌고 또 빌었다. 오죽하면 성황당을 만들어서 초하루와 보름마다 그 귀한 쌀밥과 떡, 고기, 생선, 과일 등을 차려놓고 두손을 비비며 매달렸을까. 어머니는 열 명을 낳아서 한 명을 잃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이 열 중 대 여섯을 먼저 보냈다. 밭 농사나 마찬가지로 사람 농사도 반타작이었다.
성미는 막내 딸과 함께 한 달 살이를 어머니 집에서 할 모양이다. 10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안고 왔던 갓난 아기가, 어느새 숙녀가 다 되었다. 어머니의 보호자인 양 의젓한 모습으로 어머니 곁을 지키는 찬미가 얼마나 대견한지, 할머니인 큰 언니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한 생명이 떠나가면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자연의 순환원리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이어가는 게 우리네 인생사, 묵묵히 걸어가야 할 저마다의 인생길인가 보다.
할머니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다는 손녀를 따라 간 곳은 2층 양식당. 어머니가 좋아하는 국수가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연하곤란(삼킴장애)이 있는 어머니가 입을 벌려 몇 젓가락을 맛있게 드신다. 하기야 증손녀가 그 귀여운 손으로 ‘할머니, 이 국수 드시고 오래오래 사시라’는데, 어찌 마다할 것인가.
식당을 내려올 때는 언니가 등을 돌려 어머니를 업었다. 손녀가 그 뒤를 받치고, 증손녀가 조심스레 따라오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 인생역정에 이미 그려져 있는 한 장의 그림 같았다. 하늘 위에서 장마를 밀치며 얼굴을 내민 햇님이, 눈부신 햇살을 '반짝'하고 터뜨려주었다. '이때다'하고, 순간 핸드폰을 누른 나. 계획 없는 일이라 사진은 별로지만, 어머니 인생의 행복한 때로 기록되리라.
자식들이 반갑게 왔다가 서둘러 가버리면, 어머니는 똑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기만 하고 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그말을 삼키지 못하고 대문 앞을 서성이며 못내 아쉬운 어머니. 혹여 잊어버린 물건이라도 찾으로 되돌아올지 누가 알랴. 그 서운만 마음이 내게도 들어와서, 우리도 어딘가로 떠나보고 싶어졌다. 나도 이제는 할머니가 다 되었다.
“어머니, 우리도 어디 가보카 마씸?”하고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자동차 문을 여신다. 그래, 모처럼 우리도 어딘가로 떠나보자. 채비고 준비고 없이 무턱대고 집을 나서니, 낯선 사람들이 섶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세상에! 우리 집 앞이 올레꾼들의 명소가 아닌가.
조금 더 달려가니, 구두미 포구에 사람들이 모였다. 보목마을이 운영하는 ‘섶섬지기’ 주변에도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이중섭 화백이 그려서 유명해진 ‘섶섬이 보이는 풍경’ 앞에는 사진 찍는 이들이 분주하다. 그 유명한 화가께서는 2〜3 키로 너머의 솔동산 언덕마루에서 이 섬만을 그렸다는데, 여기에서는 문섬과 범섬도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어찌보면 화백이 머무셨던 그 동산 위에서는 문섬이 더 가까이, 범섬도 한 눈에 더 들어왔을 터. 유독 섶섬을 그리신 특별한 사연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하기야 ‘소나기’로 이름난 황순원 선생께서도 이 섶섬을 배경으로 ‘비바리’를 쓰셨잖나. 어쩌면 서귀포 부둣가, 사람들이 더 많아서 알려진 두 섬보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한 이곳에다 당신의 외로움을 풀어놓으신 게다.
그래, 멀리 간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오늘은 여기에서 섶섬지기가 되어 보자. 가게에서 과자도 사고, 아이스크림·사이다·커피도 샀다. 어머니의 얼굴에 아기같은 웃음이 피었다. 동심이 된 어머니가 과자를 가슴에 안고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들썩거리며 기분좋은 바다가, 60년을 물질해 온 해녀를 알아본다. 어머니가 바다의 응원에 온 힘을 다 내어서, 허리를 펴고 어깨도 벌렸다. 섶섬이 손을 흔들고, 파도가 노래한다. 하늘의 뭉게구름도 너털웃음을 흩날린다.
그 광경이 너무나 좋아서, 핸드폰을 꺼내서 어머니를 찍었다. 10년을 더 젊어진 어머니가 화알짝 웃는다. 소풍 나온 아이처럼 즐거움이 가득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올레꾼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남부럽지 않게 웃었다. 오래토록 생각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다. ‘섶섬 앞에서 어머니와 사진 찍기’가 이렇게 이루어지다니....
요즘은 좋은 일이 더 좋은 일을 끌고 오는 모양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도 이제는 옛말인 듯, 미국에서 온 막내 아들이 다시 어머니를 보러 왔다. 이번에는 딸과 사위를 동반하고서 무게감을 더하려는 듯 수박까지 동원했다. 어머니를 보고 가는 마지막 이별이라, 방문단의 규모에 신경을 쓴 모양새다. 손녀딸 단비가 할머니께 남편을 소개한다. 그야말로 상남자, 미군 중령이란다. 씩씩하고 미남자인 손자사위가 어머니의 심금을 제대로 울렸을까? 이번에는 아들, 며느리, 손녀를 다 알아보신다.
참 알 수 없는 게 치매 할머니의 심신상태다. 지난 번에는 ‘막내 아들이 미국에서 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무표정이시더니.... 역시 부담 없이 예쁘기만 한 손자가 더 반가우신가? 아무튼 다행이다. 아들·손자·며느리가 다 모여서 마치 개구리 가족처럼 자기 소개가 즐겁다. 이렇게 오순도순 아기자기, 분위기가 좋을 때는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모두를 섶섬 앞에 모아서, 가족사에 첨부될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저절로 웃음꽃이다. 막내 효과를 숨길 수 없으신 거다. 오늘도 어머니 생애가 사나흘 가량 늘었으리라.
그래,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리고 매사는 더 두고 다시 볼 일이다. 어머니가 2남8녀, 10명의 자식을 두고서 가장 가슴을 졸이며 기도를 많이 드린 자식이, 인생 드라마의 마기막 회차를 이토록 가슴따뜻하게 장식하다니.... 아무렴, 우리 김성춘 여사께서 눈물흘리며 가슴에 묻은 첫 아이의 숨결이, 막내 아들의 가슴속에 어머니를 향한 사랑으로 깃들어 있지 않으랴.
문득,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슬하에 몇 명의 자녀손을 두었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 이참에 어디 한 번 헤아려볼까? 한 번을 계산하고 두번을 검산해 보니, 대략 86명이다. 세상에!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혼자가 된 아버지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랄 때, 그 외로움과 서러움을 하늘이 보신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이 102년만에 86으로 번성할 수 있으랴. 그 아버지의 자리를 84년 동안 묵묵히 지켜 온 어머니의 눈물이 우리 가슴을 적신다. 우리 어머니,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다. 그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에 목이 매여서 눈물이 올라온다.
오늘 아침에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갑자기 멀리 있는 자손들이 왜 이리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들까. 어머니는 어찌하여 갑자기 배가 고프다시며 동새벽에 먹을 것을 달라시나. 급하게 흰죽을 끓이는 내 마음에 어두움이 깃든다. 이 모든 일이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평범한 일상이기를. 오늘도 어머니의 하루가 평안한 졸음으로 이어지기를. 이따금 마당에 나가서 이제 막 봉오리가 맺힌 고추를 따시고, 상추를 뜯어 오셨으면. “어머니, 무사 벌써 이추룩 동무래기를 따부러수과? 홑썰 더 놔두민, 더 클 건디....”라며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할 수 있기를.... 이렇게 가슴이 젖어들고 마음이 무거운 게, 길어진 장마와 어두운 구름 탓이기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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