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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공파 36세 허찬국 박사의 칼럼, 202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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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지중해의 조종(弔鐘)

2023.07.03

먼바다는 타고 있던 배가 잘못되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처럼 트렁크를 열어놓고 가드레일 밖으로 피할 수 없기에 위험한 환경입니다. 해난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보통 일회성입니다. 사고 후 경각심이 높아지고 안전조치가 강화되기 때문이지요. 지난달 18일 세계 언론이 집중 조명한 심해 잠수정 타이탄이 수압으로 내파(內破)된 사고도 아마 재발 방지가 확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백여 년 전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호 잔해가 있는 캐나다 동해안에서 3천 미터가 넘는 심해까지 잠수하는, 아직 시운전 중인 잠수정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확실히 규명되기까지 승객을 태우고 잠수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런데 지중해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해난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불법 이민자를 태우고 이탈리아나 그리스로 향하는 범죄조직의 선박들은 왕복 운항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낡고 폐기해야 마땅한 선박들이 이용됩니다. 그러니 사고도 더 빈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수정 사고 소식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며칠 전 그리스 연안에서 약 750명을 태운 어선 아드리아나호가 침몰하며 6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배는 이탈리아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싣고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출발했으나 그리스 남부 바다에서 표류하다 침몰했습니다. 그리스 경비정은 이 배에 여러 차례 접근했고 침몰 당시에도 가까이 있어서 107명을 구조했는데, 모두 젊은 남자들입니다. 여자와 어린이들은 배 내부에 있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합니다. 그리스 당국은 생존자 중 9명의 이집트인들을 밀입국 범죄 일당이라는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그리스는 2015년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었을 때 튀르키에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던 엄청난 탈출 행렬의 교두보였지요. 당시 피란민 규모가 100만 명을 넘으며 일부 EU 회원국들이 국경을 폐쇄하는 등 난민위기가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 후 그리스는 불법 입국 대응조치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심지어는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선박을 영해 밖으로 밀어내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 선거에서 불법 입국자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의 보수파가 승리를 거두며 이런 정책이 바뀌지 않을 전망인데, 그리스 정치인들은 EU가 그리스의 강경책이 유럽으로 불법 입국자들의 유입을 줄이고 있기에 내심 반기고 있다고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드리아나호 침몰과 타이탄 내파 사건의 안타까운 공통점 하나는 파키스탄입니다. 먼저 타이탄의 경우 국적은 영국이지만 파키스탄의 거부(巨富) 집안 출신 사업가와 그의 19세 된 아들이 각각 3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 탑승객이었습니다. 아드리아나호에는 350 명 넘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촌 지역 출신들로 일자리와 돈 벌 기회를 찾아 잘사는 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제적 난민들이지요. 이들 중 20여 명은 같은 마을 출신이라고 합니다. 무슬림 신도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순례를 가기 위해 오랫동안 돈을 모은다고 합니다. 메카보다 훨씬 먼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가는 것만 해도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거기에 밀항선 운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여정이었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죠.

7월 1일 뉴욕타임스 기사(Everyone Knew the Migrant Ship was Doomed. No one Helped)에 따르면 파키스탄 승객은 배의 맨 아래 칸, 그 위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중동지역 출신은 배 상층에 강제로 배정되었고, 갑판 자리를 원하면 50달러를 내야 했다고 합니다. 생존자 중 단 12명만이 파키스탄 사람이었습니다. 3일이 소요된다는 항해가 4일째로 접어들며 악조건을 견디지 못해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했습니다. 브로커가 승선자들에게서 뜯은 운임이 약 350만 달러(약 45억 원)로 추산됩니다.

사건 발생 후 타이탄의 경우 온 세계 언론이 보도를 이어갔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은 최신 장비와 전문 인력을 구조와 사건 수습에 투입했습니다. 실제로 타이탄의 잔해가 심해에서 수거되어 며칠 전 인양되었죠. 아드리아나호는 목적지 이탈리아보다 더 동쪽에 있는 그리스 가까운 바다로 항해(혹은 표류?)했습니다. 그리스 해안경비 당국은 도우려 했으나 아드리아나 승선자들이 이탈리아로 간다며 거절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이탈리아를 선호하는 것은 최종 행선지인 프랑스나 독일, 또는 더 북쪽에 위치한 부자 유럽 국가로 가는 게 더 용이하고, 밀입국자에 대한 정책이 그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배의 선장은 원래 목적지에 도착해야 약속된 돈을 받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고집할 이유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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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해경 헬기가 찍은 침몰 전 아드리아나호(왼쪽),
올 2월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에 밀려온 난파선의 잔해 (오른쪽) (각각 뉴욕타임스와 npr 기사 캡쳐)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 초부터 6월 26일까지 불법이주자 약 2000명이 지중해에서 사망했는데 아드리아나 사고 때문에 작년 같은 기간 희생자 1358명보다 규모가 커졌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년 전체로는 희생자 수가 2439명이었습니다. 아드리아나호와 같은 배들이 입출항이나 사고를 꼬박꼬박 신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사고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개연성이 큽니다. 그 이전에도 매년 1천~3천 명 정도의 희생자들이 있었습니다. 불법 입국자 출신국은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등 지중해 연안국들이 많지만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먼 지역 사람들 비중도 꽤 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들이 떠나온 나라들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사회가 얼마나 안정되었나, 먹고사는 게 얼마나 용이한가가 중요합니다. 노동력이 부족한 유럽 국가들이 경제활동에 적극적인 인구의 유입에 따른 긍정적 경제적 효과를 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숙제는 EU회원국이 호소력이 큰 반이민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악덕 불법 브로커들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이주민이 제공하는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겠지요.

아직 가보지 못한 지중해는 밝게 채색된 바다입니다. 연중 온화한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의 날씨가 지중해성 기후인데 참 지내기 편해서 ‘지중해가 나하고 맞겠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신화, 역사, 문학의 주인공들, 종교와 지식이 누비고 다녔고, 수많은 서양 예술가들의 작품의 일부이며 여유로운 휴양지를 연상시킵니다.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도 많이 붙는 듯합니다. 그 바다는 역사와 전설 속 옛사람들과 더불어 이제 아드리아나호에 탔던 여인과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이방인들을 품고 있습니다. 영국의 옛 시인은 울리는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했습니다. 망자 역시 우리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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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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