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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곯는 영국 아이들 [김수종],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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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곯는 영국 아이들

2023.02.10

요즘 영국에선 인플레로 생활고가 심해지자 푸드뱅크에 의존해서 끼니를 해결하는 노동자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어린이들이 제때 먹지 못 하자 저소득층 부모들이 푸드뱅크에서 식품을 얻어다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푸드뱅크(Food Bank)는 먹을 음식이 모자라 배곯는 어려운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자선 단체 네트워크입니다. 1960년대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유통기간이 지났지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폐기처분하는 것을 보고, 이를 기부받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착안으로 푸드뱅크가 시작됐습니다. 푸드뱅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된 일종의 빈민 구제 제도입니다. 영국에는 체인과 독립적인 단체 등을 포함하여 2,500여 개 푸드뱅크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푸드뱅크가 400여 곳이 된다고 합니다.

런던에 사는 한 유치원 교사의 사정이 신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참 딱합니다. 간식을 먹고 싶어하는 두 아들에게 스낵을 사 줄 돈이 없는 그 교사는 자기가 근무하는 유치원 소속 푸드뱅크에서 오렌지 한 개와 사과 한 개를 얻어다 담요 위에 올려 놓고 3인분으로 쪼개서 나눠 먹는 피크닉게임을 벌였습니다. 스낵 살 돈이 없어 고민하는 엄마의 속마음을 아이들에게 숨기기 위해  그 교사는 게임 형식으로 푸드뱅크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인 것입니다. 이 교사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끼니를 거른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렇게 푸드뱅크에서 음식을 얻어다가 배곯는 아이들을 먹이는 부모들이 1년 전에 비해 100% 늘어났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은 푸드뱅크를 새로 이용하는 부모들 같은 경우 직장은 갖고 있지만 에너지값 인상으로 생계에  쪼들리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입니다. 이런 생활고에 시달리는 계층에는 간호사, 앰뷸런스 서비스 종사자 등 다양한 직업인이 있다고 합니다.

유치원 교사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먹일 여유가 없을 정도로 영국의 인플레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영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2022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규모에서 세계 6위 경제 강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4만7천 달러로 부유한 나라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의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유발된 인플레는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 후 41년 만에 최악의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영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1%을 넘었고 새해 들어서도 10%가 넘습니다. 이러니 저소득층은 가스비와 전기료 내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네요. 오죽했으면 BBC방송이 1인분을 1파운드로 마련할 수 있는 식단을 만들어 온라인에 띄웠을까요. 영국돈 1파운드는 약 1,500원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12월분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든 소비자들이 경악했습니다. 1년 전에 비해 가스비가 약 40%나 올랐기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이 겪었던 에너지난과 인플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비명은 인플레의 악화를 예고하는 경고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상지로 국부를 축적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자랑했지만 전쟁이나 경기순환에 의해 일어나는 인플레 앞에서는 숱하게 휘청거렸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차대전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곧 추월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 주류사회 사람들은 아마 속으로 우쭐해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영국을 보면 1인당 평균 GDP가 아무리 높아도 소득불평등과 인플레가 겹쳐 일어날 때 가장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집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플레가 더 심했진다면 우리나라 저소득층의 삶은 고달파질 뿐만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중의 심리적 압박으로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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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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