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곶자왈 속의 헌책 도서관2022.12.14요즘은 헌책을 마을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해도 거의 받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에 책이 많아졌고, 도서관도 기증받은 책을 관리하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책은 누군가의 생각과 땀과 시간이 응축된 지식 산물입니다. 그 책을 구입한 사람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읽고 난 후 그 책을 보관합니다. 쓰레기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젊은 날 책을 사보는 게 쉽지 않았던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서가에 책이 꽉 차면 불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으나 받을 사람이 이젠 없습니다.사오 년 전이었습니다. 제주의 '탐나라공화국'에서 헌책을 보내주면 받겠다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쓰레기로 버리기 아까운 책을 칠십여 권 택배로 보냈습니다. 다섯 권을 기증하면 1년 비자(입장무료)를 준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그런 건 별로 관심 밖이었습니다. 탐나라공화국은 남이섬을 국제관광지로 키운 걸출한 아이디어맨이자 그래픽디자이너 강우현 씨가 제주의 척박한 곶자왈 지대에 만든 상상의 나라, 즉 일종의 관광공원 시설입니다.헌책도서관 안의 어린이 상상 체험교실보름 전 탐나라공화국에 구경 갔습니다. 나의 고향 서귀포시 안덕계곡 감산 마을 사람들 몇 명이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몇 년 전 책 기증한 것을 핑계 삼아 비자(입장권)를 발급받아주고 그들 틈에 끼어 구경했습니다. 칠팔 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아갔을 때는 사반나처럼 돌무더기만 있고 몇 대의 불도저가 윙윙대는 공사판이었는데 그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제주 해변 경치에 매료되는 관광객 눈에는 아직도 황무지입니다.강우현 대표가 이웃 마을 주민이 왔다고 이곳저곳 안내하며 정성들여 설명해주었습니다. 그의 입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좋았습니다.커다란 원통형 콘크리트 건물 안은 마치 동굴 같았습니다. 도덕경 저자 노자를 기려 만든 노자관(老子館)인데 그 안에 책이 꽉 차 있었습니다. 중국 서적도 있었지만 한국 책이 더 많았습니다. 또 하나의 2층 콘크리트 건물에도 방마다 서가에 책이 가득했습니다. 교실같이 꾸민 어느 방에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헌책도서관'. 서가를 구경하며 저 책 속 어딘가에 내가 보낸 책도 끼어 있겠지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헌책 도서관 장서가 몇 권인지 강 대표에게 물어봤습니다. "30만 권까지만 헤아리며 받았습니다. 간간이 헌책을 갖고 와서 자신들이 원하는 곳 서가에 꽂아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100년은 넘도록 그대로 보관할 겁니다." 책을 읽으러 가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구경하러 가는 도서관이라는 말이 맞을 듯합니다.강우현 대표는 책뿐 아니라 남이 버리는 물건, 즉 쓰레기를 갖고 이 상상의 나라 3만 평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공화국 정문에 높이 15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얀 조각이 2개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중문 관광단지에 돌지 않고 오래 세워져 있던 제주도 최초의 풍력발전기를 철거하게 되자 강 대표에게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어왔다고 합니다. 강 대표는 필요하다면 돈을 달라고 할 것 같아서 "필요 없지만 가져다 주면 쓸 방도를 생각해보겠다"고 말해서 공짜로 운송비도 안 들이고 얻게 됐다고 합니다. 디자이너인 강 대표에게는 쓸모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모양입니다.강 대표의 역발상으로 전국에서 버린 물건들이 탐나라공화국에선 멋진 시설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버려진 안산의 공원 철조망이 이곳에선 탐방객들이 앉아 쉬는 벤치로 둔갑해 있습니다. 지방정부가 연말 예산 집행 목적으로 철거한 보도블록으로 이곳 탐나라공화국의 중앙도로(Main Street)가 멋있게 포장되었습니다. 빈 병들이 이곳 광장 무대의 벽면을 장식합니다.강 대표는 구경이 끝나자 테이블 맞은편에 계곡 마을 사람들을 앉게 한 후 "매몰광부를 살려낸 음식"이라며 믹스커피를 타서 같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붓을 먹물에 담뿍 찍더니 순간적으로 휘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옆에 앉은 나는 무슨 글자를 쓰는지 도무지 몰랐지만 반대편에 앉은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마을 이름을 넣고 휘호를 거꾸로 했던 것입니다.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헤어지며 인사말을 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십시오. 꼭 돈을 써야 일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구성원들이 돈 안 쓰고 발품을 팔아 해보십시오. 정부 지원금에 너무 의존하지 마십시오."-탐나라공화국의 노자관(Lao Tzu Hall) / 버려진 풍력발전기 날개가 조각품으로 재생되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필자소개김수종‘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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