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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등대 이야기 [김수종],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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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등대 이야기

2022.09.15

빨간 양산을 든 여인이 등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갑니다. 까만 현무암 바위 끝자락에 서 있는 하얀 등대는 마치 조각작품 같습니다. 등대 너머로 쪽빛 바다, 수평선, 구름이 듬성듬성 걸린 하늘이 일망무제로 펼쳐집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누군가 그린 풍경화 한 폭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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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동난드르 진황등대 / (우) 사계포구 춘지등대

더위가 한창이던 8월 동향 사람들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이 떴습니다. 열어봤더니 그건 인간이 지상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드론을 띄워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드론이 등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찍은 것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카톡방 멤버인 강용찬 씨(전 목원대 교수)의 문자가 달려 나왔습니다.
"이 등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정말 그림 같다. 해변 모양이 제주도 같기는 한데 본 적이 없네요."
"작가가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것임."
"혹시 저거 동난드르에 있는 '강진황 등대' 아닌가요? 재일교포가 고향에 기부해 만든 등대. 그래서 사람 이름이 등대에 붙었다는데."
"그러면 사계 포구에 있는 '김춘지 등대'와 짝을 이루는 등대겠구나." 이런 문자로 끼어든 사람은 전 한국교통연구원장 이창운 씨였습니다.
"교통연구원장 하더니 그런 거 훤하게 아네."  옛 친구의 장난기인 듯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옛날에 동네 사람한테 들었어."

오늘은 자유칼럼 독자들에게 사연이 아름다운 등대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은 제주섬에서 불도저 자국이 비교적 적은 지역입니다. 그 덕분인지 이곳 해변은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몇 번  그 등대를 먼 발치서 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경관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게 드론 사진의 위력인 듯합니다.  
자유칼럼 글로 이 등대 이야기를 쓰겠다는 문자를 띄웠더니 카톡방 멤버들이 이 정보 저 정보를 챙겨 주었습니다. 또한 사진작가의 도움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제주도 지역을 말할 때 지명보다 올레 코스로 얘기해야 쉽게 이해된다고 합니다. 이곳 안덕면은 제주올레 9코스와 10코스가 연달아 있는 해변입니다.  
올레 8코스가 9코스로 이어지는 지점에 '동난드르'라는 마을이 해안 절벽 아래 있습니다. 요즘은 올레 관광객들이 즐겨 걷는 해변길이지만  옛날에는 척박한 어촌으로 여자는 물질(해녀)로, 남자는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일제 시대 돈을 벌기 위해  이 동네 사람들 여럿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강진황도 그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열심히 일해서 나름 성공했던 모양입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한일간 국교가 정상화되자 재일교포들은 고향을 찾기 시작했고, 고향 마을에 우물을 정비해준다든가 공회당을 지어주는 등 물질적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자신이 다녔던 초등(국민)학교에 어린이 야구세트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전후 경제부흥으로 잘살기 시작할 때였고 한국은 보릿고개 넘기가 힘겨운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강진황은 좀 특이하게 마을에 기여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의 향수를 간직한 마을 포구에 등대를 세워 어선들의 뱃길을 밝혀주고 싶었습니다. 1993년 당국의 허가를 받아 자비 7천200만 원을 들여 해안 절벽 위에 등대를 세웠습니다. 아마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기 족적을 그렇게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당국은 '진황등대'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진황등대로부터 서쪽으로 약 5㎞ 떨어진 곳 올레 10코스에 사계리 포구가 있습니다. 요즘 사계리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으로 유명 관광지 마을이 됐지만 옛날에는 그렇고 그런 갯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 출신 스무 살 처녀 김춘지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돈을 벌어 잘 살아보고 싶었겠지요. 그녀는 일본에서 인근 마을 '동난드르' 출신 강진황을 만나 결혼했고 플라스틱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김춘지는 남편이 진황등대를 만든 2년 후인 1995년 자비 1억 원을 내놓아 고향 사계리 포구 방파제에 빨간 등대를 세웠습니다. 당국이 '춘지등대'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왜 이들 부부가 등대를 염두에 두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이들이 어릴 적 살던 제주도의 어촌은 전기가 없어 밤만 되면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갔던 어부들은 풍랑을 만나면 길을 잃거나 해안 바위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마도 강진황 김춘지 부부는 각자의 고향에 등대를 세워서 어선의 길잡이가 되게 하자고 이심전심 마음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등대불이  되어 밤마다 서로 신호를 보내며 바라보자고 토닥였을 법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커풀 등대가 생긴 게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세상은 바뀌어 21세기가 깊어졌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부자 나라가 되어  개인이 등대를 세울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뭔가 기여하고 싶어 했던 20세기 재일교포 1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이 든 재일교포 1세들이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얘기가 들리고 이들을 위해 지원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이제는 한국쪽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세태를 생각하면 부부 등대 이야기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애잔합니다.

이 부부 등대 이야기가 자유칼럼에 게재된 계기는 작가 김민수 씨의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그는 바닷가를 걷다가 조각 같은 진황등대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이 카톡방에 뜨면서 자유칼럼 기사로까지 연결되게 된 것입니다. 진황등대의 짝이 되는 춘지등대의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는 필자의 문자가 나가자 카톡 멤버들이 번개같이 졸라서 김 작가가 시간을 내어 드론을 띄우고 동영상을 찍어 자유칼럼에 제공했습니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서울 출신 김 작가는 5년 전 안덕면 감산리 마을에 정착해서 빈 감귤 창고를 빌려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열었습니다. 몬딱은 모두를 뜻하는 방언입니다. 김 작가는 이 갤러리를 중심으로 작가활동을 하는 한편 현지 주민에게 스마트폰 사진 교실을 만들어 아름답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잘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열어줍니다. 김 작가는 제주도의 모든 자연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를 가장 강력하게 잡아당기는 것은 흑우(검은 소)라고 합니다. 제주도에는 약 1,500마리의 검은 소가 방목되는데, 그는 흑우의 얼굴을 찍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에 몰입합니다.

작가 김민수가 그린 자화상과 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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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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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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