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학산책_고문서와 옛편지]소치의 그립값:
을유년(1885·고종22) 해남 향리에게 보낸 간찰
하소연 통해 “그림값·닭과 술 보내줘 감사”

소치가 해남 향리에게 보낸 간찰(1).
소치가 해남 향리에게 보낸 간찰(1).

이번에는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이 팔순 가까운 나이에 해남 향리 정우형(鄭愚衡, 1847∼1916)에게 보낸 간찰 2통을 소개한다. 

피봉에 ‘정전제(鄭田制)’라고 되어 있어 전제소를 담당하는 향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제(田制)는 전제소(田制所)의 줄임말로 토지를 양전(量田)하고 조세 부과를 담당하는 아전을 말한다. 

희중(希仲)은 정우형의 자(字)이고 인계(仁契)는 ‘어진 친구’ 즉 상대방에 대한 높임말이다. 정우형은 아직 마흔이 안된 젊은 향리로 한창 활동을 하던 때이고 소치는 여든에 가까웠다. 

낙암(樂庵)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치가 말년에 낙암이라는 호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도 운림산방이나 근처에 있던 쌍계사의 한 암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1885년이면 소치가 78세의 고령으로 거의 은퇴하여 집에 있을 때의 편지이다. 고령임에도 젊은 향리 정우형에게 ‘소치 노제[痴老弟]’라고 칭하고 있다.

3일 간격으로 보내진 이 간찰 두 건은 그림에 대한 논의와 부탁, 그리고 그림값을 두고 실랑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노골적으로 천문주(千文周)라는 사람에게서는 15량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정우형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충분한 사례를 요청하고 있다. 
또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장지(壯紙)를 사줄 것도 부탁하였다. 진도에서 해남까지의 그림 심부름은 어린 손자가 맡아서 하였다.

소치 산수(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치 산수(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鄭 田制任 按下 樂庵客候狀 (一片雲) ]
希仲仁契任案下
樂庵一顧 ?庸感欣 而中/間探討訛誤 以至今日 此無相/及邇 惟凉意漸動/ 任中候度 益以晏重 煩惱頓/無耶 ?祝?祝 老弟堪耐客苦/ 認昨常事 而近日遽承從伯/喪訃 情理悲廓耳 第畵事/留囑 曷不曲副 誠美已了 故/玆以委阿孫入送 一一/覽之 皆可合用則幸矣 此阿孫/ 雖稚童 足可替述翁言 告之/必存厚意 如何如何 都不宣
乙酉七夕日 癡老弟 鍊 拜
又有不然者 不得不提起 幸毋作/蹙眉觀 付之一笑如何 非他 蘊/仁洞千文周 亦有囑畵事 恰副/送之 而第觀其用心厚薄之如何/ 無一言??矣 畢竟以十五兩錢酬/勞送之 其感?如何 且念吾與/君世誼不如千耶 自來交情不如/千耶 且風度之厚不如千耶 又畵/事之多不如千耶 望須十分平心/思之 我非做詐文周書 在此取覽/焉 蔽一言 客地措手足果難 不拘畵/事 錢十兩惠之如何 我則無此錢/難保之地 君則損此錢無縮之勢/ 願名思義 如何如何
壯紙事 日前相對言矣 若有可/求之道 勿拘價之高下 一束二束 買/送如何 價文依示入送矣

[정 전제소 님 안하 낙암객 문안 편지 (한 조각 구름) ]

희중(希仲) 인계(仁契) 님 안하

낙암(樂庵)에 들러주셔서 매우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서로 말한 것이 잘못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서로 가깝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선선한 기운이 점차 생기는데 님의 건강도 더욱 편안하시고 걱정은 없으신지요? 그립고 축원을 드립니다.
저는 객고(客苦)를 감내하는 것이 이제 보통이 되었습니다. 근일에 갑자기 종백(從伯) 씨의 부고(訃告)를 받고는 정리(情理) 상 매우 슬펐습니다.
그림을 부탁받았으니 어찌 부응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마쳐서 여기에 손자를 시켜서 보내드리오니 하나하나 살펴보십시오. 모두 쓸모가 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이 손자는 비록 어린아이이지만 족히 할아비 말을 대신할 수 있으니 고하면 후의를 가지고 들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을유년(1885, 고종22) 칠석날 소치 노제(老弟) 련(鍊) 배(拜)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서 부득불 제기합니다. 혹여나 찡그리지 마시고 한번 웃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게 아니고, 온인동(蘊仁洞)의 천문주(千文周)도 역시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여 기꺼이 그려서 보냈습니다. 다만 그의 마음 쓰는 것이 얼마나 후하고 박한가를 볼 뿐이고 한마디도 시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필경(畢竟)에는 15량 돈을 댓가로 보냈습니다. 그 감사함이 어떻겠습니까?
나와 당신의 세의(世誼)가 천가만 못합니까, 전부터 교제해온 정이 천가만 못합니까? 당신의 풍도의 두터움이 천가만 못합니까, 또 그림 일이 많은 것이 천가만 못합니까? 바라건대, 충분히 평정심을 가지고 생각해주십시오. 내가 천문주의 편지를 거짓으로 만들어 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니 여기서 가져다 보십시오. 폐일언(蔽一言)하고 객지에서 수족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과연 어렵습니다. 그림 일에 구애받지 말고 10량 돈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 돈이 없으면 보존하기가 어렵지만, 당신은 이 돈이 없어도 축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이름에 맞게 의리를 생각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장지(壯紙) 문제는 일전에 만났을 때 말했습니다만 만약 구할 길이 있으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1속(束)이든 2속이든 사서 보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값은 알려주시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당대 최고의 명필인 추사에게서 그림과 글씨를 배웠고 나중에는 헌종의 부름을 받아 대내(大內)에 들어가 국왕 앞에서 그림을 그려 올린 소치가 말년에 고향에 낙향하여 주변 고을의 향리와 그림값을 놓고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 훤히 들어온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림값을 제대로 주지 않은 모양이다. 소치는 정우형에게 같은 해남 온인동(蘊仁洞)의 천문주(千文周)도 그림값으로 15량을 보냈다면서, 당신과 나의 세의(世誼)가 천가만 못한가, 아니면 교제해온 정이 천가만 못한가, 당신의 도량이 천가만 못한가, 그림 일이 많은 것이 천가만 못하냐고 다그치며 10량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당신은 그 돈이 없어도 되지만 자신은 그 돈이 없으면 살아나갈 방도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소치가 요구한 10량 내지는 15량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인가? 대개 쌀 1섬 가격이 5량으로 보고 있으므로 쌀 2, 3섬 정도에 해당한다. 다른 생활 수단이 별로 없었던 시기에 쌀 2, 3섬을 그림값으로 받으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생활은 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소치의 이러한 하소연이 통했는지 바로 3일 후에 소치가 다시 정우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림값과 닭과 술을 같이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신선의 진액, 신령스러운 고약 같은 술은 마침 산사(山寺)에 좋은 손님과 시를 아는 중이 있어서 같이 다 마셨다고 하였다. 이 편지에는 또 소치의 그림이 해남현에 도착하자 서로 그림을 가지려고 경쟁하는 모습도 잘 그려져 있다.

소치가 해남 향리에게 보낸 간찰(2)
소치가 해남 향리에게 보낸 간찰(2)

[縣 田制所 集史 樂庵客候函 (一片雲) ]

希仲 惠覽
再昨承覆 何異握手 共/欣第一 是孔方兄來臨 兼/之酒 兼之鷄 滿眼燦爛 滿/心欣喜 何以言旣 且鼈腹/豊大 斗酒恰受 酒味亦佳 可/以比仙液靈膏 適有好客/韻僧 同榻一杯一杯復一盃/ 倒壺乃盡 如此快活事 入山/後初有 曷不感注萬千 老/炎愈酷/ 候度增重否 示以欠安 旋切/奉慮 然神旺氣逸之時 何憂/少愆也 更庸憧禱 此狀之痴/頑 何足言喩 第畵軸之抵/縣司 津致以至見攫 咎在我/矣 然亦何妨也 此亦相親間/嬉好之事 還復仰賀耳 又有/不然者 紙本二件送之 則當如原本 更寫送呈 卽兩便之/事 幸勿慮我老 力之未遞/ 餘姑不宣
乙酉七月十日 痴老弟 鍊 拜

[현 전제소 집사 낙암객 문안 편지 (한 조각 구름) ]
희중 보십시오
그저께 답장을 받으니 악수를 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제일 기쁜 것은 바로 공방형(돈)이 왔고 겸하여 술도 왔고 겸하여 닭도 왔으니 눈 가득 찬란하여 마음 가득 기쁘니 어찌 다 말로 하겠습니까? 또 자라의 배가 크고 넉넉해서 말술이 충분히 들어가고 술맛도 좋습니다. 가히 신선의 물과 신령스런 고약[仙液靈膏]에 비유할 만합니다. 마침 좋은 손님과 시를 하는 중이 있어서 같이 앉아서 한잔 한잔 또 한잔 하며 술병을 기울인 후에게 다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쾌활한 일은 산에 들어온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니 어찌 천만 가지로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노염(老炎)이 더욱 혹독한데 건강은 좋으신지요? 조금 불편하다고 하셔서 걱정입니다. 그러나 정신은 왕성하고 기운이 좋은 때에 조금 허물어졌다고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다시 그리워하고 기원합니다.
저는 어리석고 완고한 모양이니 족히 무슨 말을 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화축(畵軸)이 현사(縣司)에 도착하여 모두 빼앗겼다고 하니 허물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뭐 방해될 게 있습니까? 이도 역시 서로 친한 사이에 좋은 일이니 도리어 축하할 뿐입니다. 또 그렇지 않다면 지본(紙本)을 두 건을 보내면 마땅히 원본과 같이 다시 그려서 보내드리면 둘 다 좋은 일이겠습니다. 제가 늙어서 힘이 미치지 못할까 걱정은 마십시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을유년(1885, 고종22) 7월 10일 소치 노제 련 배

글쓴이 김현영(金炫榮)(한국고문서학회 명예회장)

본보는 한국학호남진흥원과 손잡고 ‘호남학 산책’에 실린 기획물을 연재합니다. 전문 필진이 기록한 ‘호남학 산책’의 기획물 중 ‘고문서와 옛편지’ ‘문화재 窓’ ‘풍경의 기억’ ‘彿家別傳’ 등의 코너 이름으로 실린 내용이 광주드림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됩니다. 한국학호남진흥원(www.hiks.or.kr)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민족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호남한국학 진흥을 위하여 2018년 공동 설립한 기관입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