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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8월 3일 마쓰이라는 일본군 공병 소좌가 부산 가덕도 외양포 마을에 살고 있던 양천 허씨 64가구 주민들을 강제로 쫒아냈습니다.

신공항 활주로로 변하게 될 가덕도 외양포. 일제강점기 마을 전체가 일본군의 요새였고, 마을 뒤편에는 1904년 건설한 막사와 무기고 등

마을 뒤쪽에 1904년 일본군이 건설한 포대진지가 남아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를 씌운 반 원통형 막사와 무기고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고, 무기고 사이에는 360도 회전하며 발사할 수 있도록 포를 설치했던 흔적이 선명하다. 이곳 포진지 덕분에 일본군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양포의 수난이 일본에는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됐으니 우리로서는 그만큼 뼈아픈 유물이다.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대진지.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대진지.

외양포 포대진지에 일본군이 세워 놓은 '사령부발상지지' 비석. 대한제국을 일본 땅으로 여겼다는 표지(標識)나 마찬가지다.

                외양포 포대진지에 일본군이 세워 놓은 '사령부발상지지' 비석.

외양포 포대진지 막사 내부는 현재 가덕도의 역사를 담은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포대진지가 들어서면서 외양포는 마을 전체가 일본군 요새로 변했다. “1904년 8월 3일 마쓰이라는 일본군 공병 소좌가 부하들을 이끌고 들어와 조선 정부의 허락을 얻었노라며 마을에 살고 있던 양천 허씨 64가구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군인들이 총칼을 차고 들어와 떠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습니까.” 김상호 부산 강서문화원 해설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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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허장호

작성일 : 2022-01-01


출처: 바람 타는 섬...외양포 150년 동백숲도 스러지려나. 자박자박<138> 소음탐방 부산 가덕도, 한국일보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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