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성 허준은 영원한 파주인이다.(1539년∼1615년)
허준(浚)선생은 양천허씨(陽川許氏)이고 양천허씨는 고려(高麗) 개국(開國)이래 파주 장단(坡州.長湍) 지역에서 거의 1천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필하신 의성(醫聖)허준(浚),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蛟山)허균(筠), 동해척주비를 지은 미수(眉叟)허목(穆)등은 모두 10촌 이내고 파주 장단지역 토박이다. 또한 허준의 어린시절, 벼슬을 하기 전에는 아버지 용천부사 허론(許碖)의 임지를 따라 다녔을 수는 있지만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다. 모제 김안국,사제 김정국을 비롯하여 조상님들의 묘(墓)가 파주 장단에 분포 되어 모두 모셔져 있고, 허준의 아우는 문과에 급제하고 목사를 지낸 허징(徵)과 직계자손 9 대조도 모두 하포리(河浦里) 광암동(廣巖洞)에 모셔져 있다.
2. 의성 허준은 산청에 가시지 않았다.
허준선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양천허씨족보, 조선왕조실록, 친인척 족보조사, 유희춘의(柳希春)의 미암일기, 뉴스자료 및 모든 연구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허준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생활은 모두가 왜곡 되었다. 산청에서 동의보감촌을 만들 때 양천허씨 대종회에 찾아와서 사업의 정당성을 위해 허준선생 묘소를 산청으로 옮기자고 요청한 일도 있었으나 종중은 정중히 거절한 일도 있었다.
3. 의성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허구다.(유이태는 조선후기 숙종조의 어의 출신)
허준선생의 스승 유의태는 작가의 상상속 가상인물이고, 산청사람 유이태는 허준선생 출생후 106년 후의 사람인데 드라마속 유의태의 배경인물이기도 하다. 허준의 스승이라는 가짜 유의태를 드라마 속에 가상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는 ‘소설 허준의 작가 이은성’이 흥행을 위해 지어낸 허구인데도 대중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믿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4. 가양동 허준박물관과 허준문화제에 대한 평가
가양동에 시조 고려 벽상공신 허선문(宣文)의 출생 설화가 있는 허가바위도 있고, 양천허씨의 일부 출원지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허준선생은 이곳에서 출생하지도, 살지도, 동의보감 저술 등 어떠한 문헌도 존재하지 하지 않았다. 강서구에 허준박물관이 있고 공원도 조성하는 등 허준선생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도 있어 고마우나, 근거도 없이 허준의 뿌리를 주장하는 건 재평가되어야 한다.
5. 의성 허준선생과 의학사상의 뿌리.(동의보감 집필 배경은 역학)
허준선생의 동의보감 구성은 동양학의 뿌리인 주역에 그 근원이 있다. 허준이 미암 유희춘(柳希春)에게 <노자(老子: 도덕경)> <문칙(文則)> <조화론(造化論)>이라는 책을 주었는데 여기서 허준의 도가적 사상을 알 수 있고, 더구나 집안의 할아버지뻘 되시는 상우당 허종(琮)과 문정공 허침(琛) 형제(정승) 역시 의학(醫學)의 대가이시고, 5촌 척(戚) 되시는 모제(慕齊).김안국(金安國),사제(思齊).김정국 (金正國)도 의학 서적을 발간하셨고, 손주뻘인미수(眉叟) 허목(穆)도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부자탕 처방도 유명하니 허준의 주변인물과 학통으로 보아 동의보감의 저술 배경과 뿌리를 알 수 있다.
6. 허준선생, 사망과 영면
허준(許浚)선생 사망 당시 아들 허겸(謙)은 파주목사(坡州牧使)였다. 허준의 사망 장소는 한양 사저나 파주의 아들 집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의성 허준(許浚)선생은 파주에서 영면하셨다.
「동의보감의 허준선생을 파주의 대표적인 인물로 조성하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미루어 볼 때 허준선생은 파주 장단지역 토박이고 어린 시절 벼슬을 하기 전 까지는 파주를 떠나지 않다가 벼슬 후 파주에서 영면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강서구에 허준 박물관과 공원이 건립되어 있으나 실제 허준선생은 파주의 인물이다.
파주의 대표적인 선현인 율곡선생도 파주의 자운서원 보다는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이 더 유명하고 많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어 파주의 입장으로 보면 배가 아픈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세계의 자랑인 동의보감의 허준선생을 파주에서 선도적으로 나서서 파주의 대표적인 문화인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글 / 전 경기도의원 한길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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