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분야 | 미정 ( 제 -호 ) [ 모름 ] |
유물/유적 유형 | 묘 |
시대 | 현대 |
수량 | 1 개 |
판도랑좌랑공 허관(許冠) 설단
위치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89번지
판도좌랑(版圖佐郎公) 숭모단(崇慕壇)에는 11세 판도좌랑공 허 관(冠)을 비롯하여 12세 문정공 허 백(伯), 12세 개성윤공 허 교(僑), 13세 지신사공 허 경(絅), 14세 야당공 허 금(錦), 16세 양양공 허 비(扉) 여섯 분의 숭모단을 지난 2004년에 20세 습(襲) 제양군(齊陽君)인 허 순(淳-27)의 묘소가 있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에 설립하고, 그 후에 17세 재령공 허 손(蓀)을 추가하여 『판도좌랑공 숭모회』 주관으로 지난 2013년까지 매해 양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시제를 봉행해 왔다. 그러던 중 2014년 15세 매헌공 허 기(愭)의 숭모비도 함께 세워 총 여덟 개의 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세종~ 철원 간 고속도로에 편입되어 2019년 9월에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 39번지로 11세 판도좌랑공 허 관(冠)을 비롯한 여덟 개의 비가 포함된 숭모단을 이전하여 세웠다.
매헌공의 묘는 비무장 지역(DMZ)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에 있어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철책선 근처에서 공(公)의 묘소를 바라보며 준비해간 제물로 정성껏 시제를 드려왔으나, 남․북 관계 및 그곳을 관할하는 군부대의 상황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어 시제를 못 모신 때가 있었다. 따라서 판도좌랑공 숭모단에 매헌공의 승모비를 세우고 판도좌랑공 시제일에 맞추어 다른 분들과 함께 매해 시제를 올리는 것으로 결정하여 비를 세운 것이다. 상황이 허락될 경우, 후손들은 판도좌랑공과 그 하계 시제가 끝난 오후, 교통편을 이용하여 매헌공의 묘소가 보이는 곳을 방문한다.
판도좌랑공의 숭모단의 묘역 숭모비의 비문은 합천공파 허 찬(燦) 회장이 찬(撰)했다.
판도좌랑공파 후손들은 지난 2014년 10월 5일 판도좌랑공파 총회를 개최하고 “판도좌랑 종회” 설립안을 만장일치로 가결 시킴에 따라 그동안 판도좌랑공 및 그 하계 관련 종사 업무를 담당해 온 “판도좌랑공 숭모회”를 “판도좌랑공파 종회”로 명칭을 변경시키는 한편 관장해 왔던 모든 업무를 또한 이관 시켰다.
판도좌랑공파는 양천허씨 인구 전체 중에서 절반 이상인 약 60% 이상을 차지하는 큰 문중이며 양천허씨 명조들 중 대부분이 판도좌랑공 후손이다. 그러나 10세 문정공 허 공(珙)의 큰 아들인 동주사 허 정(程)의 후손과 다섯째 아들인 대제학(-28) 허 부(許富)의 후손들은 셋째 아들인 판도좌랑 허 관(冠)의 후손들과 달리 이미 각각 “동주사공파”, “대제학공파” 종중(宗中)을 만들어 운영을 해 온 반면 판도좌랑공 후손들은 “종중”이라는 명칭 대신 “숭모회”라는 명칭으로 그동안 판도좌랑공 후손들을 비롯 하계 선조의 시제 등 종중 행사를 주관해 왔다.
그 이유는 판도좌랑공의 묘가 동주사공이나 대제학공의 묘처럼 대한민국에 있지 않고 북한에 위치한 관계로 묘소의 관리 수호에 따른 종사 업무가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판도좌랑공 하계에서 갈라진 10개의 중파(中派)들이 각각 종중 운영을 잘하고 있어 옥상 옥으로 거대한 문중 조직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도좌랑공 및 그 하계 종사 업무와 관련하여 종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그동안 운영해 오던 “판도좌랑공 숭모회”의 명칭을 “판도좌랑공파 종회”로 변경하는 한편 모든 관련 업무를 인수하여 현재 운영 중이다.
“판도좌랑공파 종중” 예하에는 크게 10개 파(派)가 있는데 18세 충정공(忠貞公) 허 종(琮)을 파조로 하는 “충정공파”, 18세 문정공(文正公) 허 침(琛)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 17세 합천공(陜川公) 허 훈(薰)을 파조로 하는 “합천공파”, 17세 영월공(寧越公) 허 지(芝)를 파조로 하는 “영월공파”, 17세 전부공(典簿公) 허 형(蘅)을 파조로 하는 “전부공파”, 16세 자산공(慈山公) 허 추(樞)를 파조로 하는 “자산공파”, 15세 용진공(龍津公) 허 징(徵)을 파조로 하는 “용진공파”, 15세 허 손(愻)을 파조로 하는 “송암공파”, 12세 찬성사(贊成事) 허 선(僐)을 파조로 하는 “찬성사공파”, 12세 개성윤공(開城尹公) 허 교(僑)를 파조로 하는 “개성윤공파”가 있다.
[(系代(계대)가 동일한 분은 형제들이다)
[주석]
-27) : 20세 허 순(淳)은 제양군 군호를 아버지인 허 광(礦)으로부터 물려 받았다. 따라서 올바른 표현은 제양군 군호 앞에 “물려 받았다”는 뜻의 습(襲)을 부쳐 사용하는 것이다.
-28) : 고려사 등 공(公)과 관련된 기록은 공(公)의 벼슬을 선부전서(選部典書)로 기록하고 있으나 양천허씨 족보에는 공(公)의 벼슬을 선부전서 예문과 대제학이라 기록하고 있다. 선부(選部)는 충렬왕 34(1308)년 이부와 예부 그리고 병부가 통합된 부서이며 전서(典書)는 선부의 으뜸 벼슬이었으나 공민 5(1356)년 문종 때의 관제로 복고되며 선부가 이부로 또 전리사 등으로 명칭이 자주 변경되었다.
[출처] : 양천허씨대종회60년사 제2권 P32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