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허항 [許沆] |
세수 | 20 세 |
생몰년 | ~ 1537년 |
- | 호당 :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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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는 청중(淸仲)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상우당 허종(琮)이다.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낸 허확(確)과 김수조(金守祖)의 따님인 연안 김씨(延安 金氏)사이의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종 8(1513)년 진사시에 합격한 후 중종 19(1524)년 갑신(甲申) 별시 문과에 급제했다. 1531년 정언(正言, 사간원의 정6품 벼슬)이 되었으며 이후 부교리(副敎理, 홍문관의 종5품 벼슬), 지평(持平, 사헌부의 정5품 벼슬), 사인(舍人, 의정부의 정4품 벼슬), 부제학(副提學, 홍문관 또는 규장각의 정3품 벼슬), 동부승지(同副承旨, 승정원의 정3품 벼슬) 등을 거쳐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김안로(金安老)가 1531년 재집권하자 채무택(蔡無擇)과 함께 김안로(金安老)를 도와 반대파 사림(士林)을 몰아내는 등 정권을 농단했다. 중종 32(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물러나자 채무택(蔡無擇)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양천허씨 최초의 족보인 기축보(己丑譜)를 완성하는데 형님인 좌참찬(左參贊) 허흡(洽)과 함께 큰 공헌을 하였다. 배위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평양 조씨(平壤趙氏) 두 분이며 묘는 경기도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