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허반 [許磐] |
세수 | 19 세 |
생몰년 | ~ 1498년 |
자(字)는 문병(文炳) 이고 조선 제9대 임금 성종 14(1483)년에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사직서(社稷署) 참봉직에 있으면서 연산군 4(1498)년 실시된 식년문과에 3등으로 급제한 후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렀다. 조선 제10대 임금 연산군 4(1498)년 발생한 무오사화(戊午士禍)때 연루(連累)되어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이목(李穆)·권경유(權景裕) 등과 함께 참형(斬刑)되었는데 제11대 임금 중종조(中宗祖)에 복권(復權: 잃었던 권리를 다시 찾음)되어 참의(參議)에 추증되었다. 당시 공(公)과 함께 능지처사(凌遲處死)와 참형을 당한 5명을 ‘무오사화 5현’이라 부른다. 무오사화는 조선 시대 첫 번째 사화(士禍)로 연산군 4(1498)년 유자광(柳子光)의 무리인 훈구파가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실린 사초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사림파를 모함하여 여러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갔던 사건이다. 공은 성리학(性理學)에 깊은 뜻과 학식을 가졌으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을 존경하여 복을 입었다고 추강집(秋江集)에서 적고 있다. 우리 양천 허문의 시집인 《양천세고(陽川世稿)》 서문에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은 “나의 외사촌 아우 반(磐)은 자가 문병(文炳)인데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고 시문(詩文)이 특출하다.”고 서술하여 공(公)의 학문을 엿볼 수 있다.
공(公)은 17세 영월공파의 파조인 허지(芝)의 장손(長孫: 맏손자)이며 아버지는 사지(司紙)를 지낸 허연(珚)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며 배위는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사지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인 조지서(造紙署)의 종6품 벼슬이다. 묘는 경기도 장단군 강남면에 있다. 이 사건 때문인지는 모르나 양천허씨 족보에는 공(公)과 공(公)의 동생인 허채(砦)에게 아들 없이 출가한 따님 각각 1명씩만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더 이상의 자손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