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허부 [許富] |
세수 | 11 세 |
생몰년 | ~ |
대표관직 [ 행직 ] | 선부전서 |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 묘정 배향공신인 문경공 허공(珙)의 5남 4녀 중 막내 아들이며 양천허씨 3개 대파(大派) 중 하나인 ‘대제학공파’의 파조다. 고려사열전에 의하면 ‘공(公)은 충숙왕 7(1320)년 8월에 우대언(右代言)으로 거자시(擧子試)를 주관하여 정을보(鄭乙輔) 등 80여명을 선발하였다. 공(公)의 벼슬은 선부전서(選部典書)에 이르렀으며 부인 교하노씨(交河盧氏) 사이에 6남2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 허신(信)은 직제학(直提學)에, 둘째 아들 허순(順)은 양천군(陽川君)에 봉해졌으며, 여섯째 아들 허완(完)은 정당문학(政堂文學) 벼슬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셋째 아들 허유(猷, 추밀원 부사), 넷째 아들 허저(褚, 별장), 다섯째 아들 허저(貯, 전리판서)는 대(代)를 잇지 못했다. 양천허씨 족보에는 공(公)의 벼슬을 대제학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부전서는 선부(選部)의 으뜸벼슬인 전서(典書)를 지칭하는 말로 당시의 품계는 정3품 이었으나 조선 시대의 판서(현대의 장관)와 같은 벼슬이다. 《양천세고(陽川世稿)》에 공(公)은 자손을 가르침에 ‘세업충효(世業忠孝: 대대로 충성과 효도)하고 여력문장(餘力文章: 배움에 힘씀)하라’ 되어 있는데 공(公)의 손자인 13세 고송공(孤松公) 허도(銜)가 가첩(家牒) 마지막에 쓰기를, ‘이 가르침은 공자님의 유훈(遺訓)에서 받으심이니 선조유유(先祖遺諭)를 받들어 후손들에게 전하노라’ 하였다.
공(公)의 묘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 지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공(公)의 둘째 현손인 15세 양안공(襄安公) 허형손(亨孫)의 후손들은 1985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양안공(襄安公)의 묘 위쪽에 공(公)의 설단비(設壇碑)를 세웠다. 공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유자운으로 김문민 용검에게 부치다 〔寄金問民龍劍幽字韻
경양(景陽)의 좋은 산수 한 언덕 깊숙한데 景陽山水一邱幽
물상 또한 구추(九秋, 9월)에 더욱 아름답구나 物象又宜賞九秋
보지 않았는가 동파 노거사가 不見東波老居士
그 옛날 번구(樊口)에서 오년이나 놀던 일을 昔年樊口五年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