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숭 [許嵩]

이름허숭 [許嵩]
세수11 세
생몰년 ~
대표관직 [ 행직 ]동지자정원사
봉군 陽川君 [양천군]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 묘정 배향공신인 문경공 허공(珙)의 둘째 아들로 초명(初名: 처음 이름)은 허평(評)이며 시호는 양숙(良肅)이다.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 5(1279)년에 김방경(金方慶)의 아들 김흔(金斤), 흥자번(洪子藩)의 아들 홍순(洪順), 한강(韓康)의 아들 한사기(韓謝奇) 등 귀족들의 자제 25명과 함께 고려 8대 임금 현종(顯宗)의 9대손이며 고려 23대 임금인 고종(高宗)의 외손자 대방공(帶方公) 왕징(王澂)을 따라 원나라의 볼모로 원나라로 건너갔다. 

귀국 후, 궁전배장군(弓箭陪將軍),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등을 지내며 왕명으로 원나라를 왕래하였다. 고려사는 또한 충렬왕 25(1299)년 9월 28일에 '임금이 허평(評)의 집으로 거쳐를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어 당시 양천 허씨가 왕실과 많이 가까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이 26대 왕으로 즉위한 후인 충선왕 2(1310)년 양천군(陽川君)으로 봉해졌으며 벼슬은 민조 상서(民曹尙書)를 거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동지자정원사(同知資政院事) 등을 지냈다.  

공(公)의 아들 허종(悰)이 고려 제26대 임금 충선왕의 외동딸 수춘옹주(壽春翁主)와 혼인을 하자, 공(公)은 모든 벼슬을 버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충선왕은 공(公)을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제수했다. 공(公)은 충선왕 4(1312)년 4월23일 돌아가셨다. 고려사는 ‘공(公)이 의술과 약재로 많은 사람을 살렸고 예(禮)를 중시하였으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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