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허순 [許純] |
세수 | 6 세 |
생몰년 | ~ |
대표관직 [ 행직 ] | 동지추밀원사 공부상서 |
허재(載)의 아들로 벼슬은 고려 17대 임금 인종 2(1124)년 12월에 동지추밀원사 공부상서(同知樞密院事 工部尙書)였다. 동지추밀원사는 추밀원의 종2품 관직이다. 추밀원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 숙직하여 지킴)·군기를 맡아보던 곳으로 고려 15대 임금 숙종 전까지는 중추원으로 불렀다. 공부 상서(工部尙書)는 상서육부 중의 하나인 공부의 책임자로 정3품 관직이다. ‘공부’는 토목과 건축 등을 담당하던 관청이며 ‘상서(尙書)’는 업무상 현재의 장관과 같은 관직이나 중서문하성의 재신(2품 이상의 재상)들이 상서육부의 판사(判事: 상서 위의 벼슬)를 겸직함으로 인해 기능은 위축되어 있었다. 《고려사절요》에 공(公)은 제17대 임금 인종 3(1125)년에 금주방어판관(金州防禦判官: 판관은 6품 이상의 품계로 임명하던 지방 관직)이 되고 10년 후인 인종 13(1135)년에 내시지후(內侍祗侯) 정습명(鄭襲明), 잡직서령(雜職署令) 왕식(王軾) 등과 더불어 제위보부사(濟危寶副使)로 서경수졸(西京水卒: 평양에 있는 수군) 4600여명과 전함 1백40척을 이끌고 순화현(順和縣: 지금의 평안남도 순안 지역) 남강에 들어가 묘청(妙淸), 조광(趙匡), 류참(柳旵) 등의 난을 토벌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위보(濟危寶)는 빈민의 구호 및 질병치료을 위한 의료기관이며 부사(副使)는 제위보(濟危寶)를 관리하는 7품 이상의 품계로 임명하였다.
고려 제18대 임금 의종 3(1149)년 11월 신축일(辛丑曰)에 금(金)나라에 가서 토산물(土産物: 그 지방에서 특유하게 나는 물건)을 바치게 하고 6년 후인 의종 9(1155)년 을해(乙亥)에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임명되었다. 동북면(오늘날의 함경도 지방)은 서북면(오늘날의 평안도 지방)과 함께 고려의 국경 지역으로 3품 이상의 품계(品階)인 병마사 직을 수행했는데 병마사 직책은 고려 제6대 임금인 성종 때 생겨나 제8대 임금 현종 20(1029)년에 군사와 행정까지 총괄하는 지방관으로 정착되었다. 성종 때의 병마사는 행정관의 기능이 없었다.
공(公)은 고려16대 임금 예종 9(1114)년에 백유방 병과(白曘榜丙科)에 급제하였으며 배위는 은천군군(銀川郡君) 배천 조씨(白川趙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