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허정 [許正] |
세수 | 4 세 |
생몰년 | ~ |
대표관직 [ 행직 ] | 대창승 태자태보 행 상서예부시랑 |
벼슬은 대창승 태자태보 행 상서예부 시랑(大倉丞太子太保行尙書禮部侍郞)을 지냈는데 대창승은 대창서(大倉署) 관원의 직함이다. 대창서가 무엇을 하던 관청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제23대 임금 고종 12(1225)년 10월 화재의 위험을 막기 위해 13만 3천 300여 섬을 저장할 정도의 큰 지하 창고를 대창서 안에 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곡식을 보관하던 곳으로 추측된다. 대창승은 종8품의 관직이며 태자태보는 동궁관(태자의 교육과 신변 보호를 위해 설치한 기관)의 직책으로 판단된다. 한편 상서예부(尙書禮部)는 고려 시대 중앙관청인 상서육부(상서이부, 상서병부, 상서호부, 상서형부, 상서예부, 상서공부 - 조선 시대의 육조)의 하나로 예의(禮儀), 제향(祭享), 조회(朝會), 과거(科擧)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곳이며 상서예부의 시랑(侍郞)은 정4품 벼슬로 정원은 1인이다.
상서육부에는 종1품인 판사(判事) 1명, 정3품인 상서(尙書) 1명, 종3품인 지부사(知部事) 1명, 정4품인 시랑(侍郞) 1명 정5품인 낭중(郎中) 2명 등이 업무를 관장했는데 종1품인 판사(判事)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고려 시대 최고 정무기관으로 조선의 의정부와 동일한 기관이다.)에 속한 2품 이상의 재신(宰臣: 재상)이 겸직을 했으며 종3품인 지부사(知部事) 또한 겸직 벼슬이었다. 따라서 업무 수행 형태로 보면 6부의 상서(尙書)가 현재의 각 부처 장관과 같으며 시랑(侍郞)은 현재의 차관과 같다. 그러나 재신(宰臣)의 판사(判事) 겸직은 상서육부를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예속하여 운영하는 결과를 가져와 상서(尙書)와 시랑(侍郞)의 권한은 위축되어 있었다.
배위는 증(贈) 강릉 군부인(江陵郡夫人)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며 아들은 허재(載), 손자는 상서육부 중의 하나인 상서형부(尙書刑部)에서 시랑을 지낸 허순(純)이다.